
변호사가 되면 좋은 일도 많이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게 생각보다 어렵다. 내 앞가림 하느라 정신없고, 벌어먹고 사느라 바쁘고, 짬이 나면 가족, 친구도 만나야 하니 좋은 일을 할 틈이 없다. 물론 이 모든 건 핑계겠지만, 그렇다고 이걸로 비난까지 받긴 좀 억울하다. 티나게 이기적인 사람은 아니더라도 또 그렇게까지 이타적인 사람이 아닌 나로서는 주말 늦잠을 포기하고 모처럼 칼퇴한 금요일 저녁을 포기하면서까지 좋은 일을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정당화는 어지간히 된 것 같은데도 늘 묘한 부채의식이 있었다. 특히 BBC 자연 다큐 볼 때마다 빚 독촉을 받는 기분이었다. 양심의 흑자 전환을 해볼까 하고 몇 년째 환경단체에 기부도 조금씩 하고는 있는데, 이게 역시나 돈으로 되는게 아니다. 연말정산 할 때나 되어야 아, 내가 기부를 하고 있었지, 기억하는 지경이 되었다.
좋은 일을 하는 게 내 삶에서 우선순위가 아니라는 게 문제인데, 컨설턴트로 일하면서 개발도상국 NGO들을 자문했던 친구가 예전에 이런 얘기를 해 줬었다. 같은 공익사업이라도 비영리로 진행되는 프로젝트보다 영리로 진행되는 프로젝트가 더 오래 굴러간다고. 인간의 본성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장한 인간의 습성이 영리 추구라는 점을 생각하면, 역시 습성을 거스르는 것보다 따르는 것이 수월할 터. 그래서 배운 도둑질로 환경을 위한 좋은 일을 하고 싶었다. 헌데 하필 배운 기술이 국제상사분쟁이라니. 두 개를 섞을 방법이 도저히 없어 보였다.
그런데 갑자기 눈에 보이는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파리협정이 체결된 지는 꽤 되었지만 최근 몇 년 사이 환경이 화제의 중심이 되었고, 기업들도 법령상 규제를 어떻게 안 받을지 보다는 우리가 법령을 잘 준수한다는 것을 어떻게 투자자들에게 보여줄지에 점점 더 관심을 보이는 듯하다. 싱가포르 로펌들도 환경, 사회, 기업 지배구조 (ESG, Environment, Social and Governance) 전문 프랙티스 그룹을 속속 출범시키고 있다. 며칠 전에는 탄소배출 넷 제로(Net-Zero)를 목표로 하는 로펌 및 변호사들이 Net Zero Lawyers Alliance를 발족했다.
이제 정말 핑계가 없다. 사리사욕 채우면서 좋은 일 해야지.
전아영 변호사 (웡파트너십(WongPartnership LL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