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1년에도 여름은 어김없이 찾아왔지만 마스크를 벗을 수 없는 무더운 날들이 당분간 더 이어질 전망이다. 바이러스의 급속한 확산으로 조금 일찍 휴정을 결정한 수도권 법원도 있지만, 대부분의 법원은 7월 마지막 주로 다가온 휴정기를 앞두고 현재 각종 사건들 마무리로 분주하다. 바깥세상의 상황이 이러하니 이번 휴정기는 그 어느 때보다도 차분하게 안에서 보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나는 사건메모지를 내내 쌓아두었다가 한꺼번에 정리하는 편에 속하는데, 휴정기가 바로 그 적기라 할 수 있다. 올해는 여름날의 들뜬 분위기를 한껏 느끼지는 못하겠지만, 잠시 멈추어 청소도 하고 지난 일들을 반추하며 보내는 것도 썩 나쁘지는 않을 듯하다.
시시한 사건과 이를 바라보는 재판관의 눈에 대한 이야기가 문득 떠오른다. 김용담 전 대법관께서 쓰신 '판결 마지막 이야기'에 등장하는 내용이다. 논지는 판사가 담당하는 사건 중 시시한 사건이란 없고 그 속에 감춰진 보석을 알아보지 못하고 진흙 속에 묻어버리는 판사의 평범한 눈이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혹시 나는 그동안 진흙을 덜어내지도 않은 채 시시한 사건으로만 바라보려는 깜깜한 눈을 가지고 재판했던 것은 아닌가. 잠시 멈춰야만 이렇게 흠칫 놀라 뒤돌아 볼 수 있고, 멈춰 살피고 뒤돌아 살피다 보면 마침내 눈이 밝아지는 경험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다소 거창하지만 다음과 같은 휴정기 소망들이 연달아 떠오른다. 바쁜 일상을 감내하느라 무뎌진 공감능력을 휴정기 동안 잘 회복하여 다시 법정으로 돌아가면 좋겠다. 판결의 결론이 당사자가 찾던 정답은 아니더라도, 쏟아내는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여 줄 수 있을 정도의 여유와 에너지를 넉넉히 품은 후에 휴정기가 끝나면 좋겠다. 그리고 수차례 변론을 진행해도 조정에 부쳐보아도, 도무지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던 갈등의 돌파구가 한여름 밤의 꿈속에서라도 기적적으로 비쳐 보이면 좋겠다. 익숙한 일상과 재판으로부터 의도적으로 멀어지고 낯설어짐으로써, 새로운 영감과 아이디어로 의식을 재단장한 후 다시 원래의 내 자리로 잘 돌아오게 되면 좋겠다.
김지향 지원장 (공주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