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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法臺에서

    먼 훗날 언젠가

    김창모 부장판사 (수원지방법원)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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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초 장차 어떤 미래를 계획하는지 질문을 받아 별 생각 없어 당황했는데 형사단독과 더위로 버거운 지금 그 질문을 받으면 민사중액을 하고 싶다 할 거 같네요. 그런데 그 경쟁률을 생각하면 사직 후 전담법관 임용이 더 빠를 거 같습니다. 법원은 연공제에 기반하여 능력과 무관하게 연차가 오르면 급여가 일률적으로 상승하는데, 이는 '젊어 고생하면 늙어 보상된다'는 기대를 갖게 하는 제도이나 경제성장 정체, 인구구조 변화로 사적 영역에서는 거의 사라진 거 같습니다.


    과거 판사들은 지방배석, 단독, 고등배석을 거친 후 지방부장이 되어 일부가 고등부장으로 승진하곤 했지요. 일부 부장님들은 승진 앞두고 배석 목숨 걸고 재판했는데, 당시 자기 목숨 걸고 재판하던 부장들이 고등부장 탈락을 이유로 사직하여 부당하다고 느꼈던 기억도 납니다. 이제는 법원 내 승진도 대법원장, 대법관, 민사중액 외에는 고등부장 관용차처럼 없어졌고, 평생법관제로 근무하는 선배들 모습이 먼 훗날 언젠가 제 모습이 될 수 있겠습니다.

    반면 15년 전에는 비교적 단기간만 배석하면 단독을 할 수 있었는데 후배들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배석생활과 부장의 부적절 언행으로 힘들어 한다고 하네요. 이로 인해 사무분담위원회에서 소수점까지 서로 우열을 겨루는데 대법관들의 관용차까지 없어지면 위 고통도 없어질까 싶네요. 에리스의 발견으로 명왕성의 70년간 유지되던 행성 지위도 박탈된 논리에 비추어 보면(김성모 화백은 여기서 "더 이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고 하겠네요), 위 차량도 없어지는 게 일관성이 있어 보이긴 합니다. 이제는 고위 법관이 굳이 버스, 지하철을 이용하는 게 더 이상 미담처럼 보도되지는 않겠지만요.

    지난 달 법정에서 기록을 잘못 파악하여 실수했고 어떤 대법관이 지방부장 시절 두터운 기록을 다 못 읽는 상황이 되면 판사직을 그만 두려한다고 배석에게 말씀하셨다는데, 부끄럽고 공판검사, 변호인에게 민망했습니다. 먼 훗날 언젠가 최신 법리에 어두운 채 기록 파악을 힘겨워 하고, 장유유서를 빌미로 단독 면제를 기대하며, 배석 및 연구원 없으면 판결도 못 쓰는 자가 될까 두렵네요. 그 시간이 오지 않게 무엇을 할까 휴정기에 고민해 보겠습니다.


    김창모 부장판사 (수원지방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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