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나긴 역사 속에서 의학은 인간의 생명을 지켜 왔다. 그 결과 일생 중 노년의 시간은 늘어났고, 현재 우리는 생애 말기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고민하는 단상 위에 서 있다. 물론 수명 증가는 건강한 삶의 연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즉, 단순히 수명 연장을 축복받는 생애 말기의 삶이라 말할 수 없다는 말이다. “평균수명 80세 시대”에 우리는 생애 말기를 어떻게 보내야 할 것인가?
인간은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레 노화의 과정을 겪게 되고, 질병에 취약해진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행복한 생애 말기를 보내기 위해서는 건강한 삶을 연장하는 노력에 더하여서 질병으로부터 고통 받지 않는 삶의 그 무엇이 필요하다. 질병으로부터 육체적 기능 상실을 늦추고, 통증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줌으로써 인간적, 사회적, 경제적으로 행복한 죽음을 맞게 해주는 것은 매우 중요하고, 가치가 있는 일이다. 인간의 주 사망원인이 암과 심뇌혈관 질환이기 때문에 만성적인 질병의 고통은 생애 말기의 행복을 위협하는 주적임이 자명하다. 그동안 의료기술의 발달과 신약물 개발의 노력이 생명연장을 이뤄내었다면 이제는 더 나은 삶의 질을 위한 건강증진, 재활, 생활 복귀 및 정서적 안정의 다각적 노력이 중요한 시기이다. 특히 시한부 삶을 사는 사람의 경우, 여생을 행복하고 편안하게 마무리하도록 돕는 것은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한 최선의 선택 아닐까? 그리고 그 중심에는 완화의료가 있다.
완화의료는 생애 말기에 처해 있는 환자의 고통을 예방하고, 경감시켜 환자 뿐 아니라 가족구성원의 삶의 질을 개선시키는 중요한 의의를 가진 의료의 한 분야이다. 이는 초고령화 사회에서 의료의 목표가 치료(cure)에서 돌봄(care)으로 전환되는 것을 의미하며 막을 수 없는 죽음의 그림자에 숙명적으로 대응하는 자세라 할 수 있다. 또한 이것은 환자 한 사람을 넘어서서 가족 구성원을 포함한 돌봄 제공자를 함께 행복하게 만드는 공동체 의료이다. 따라서 축복받는 생애 말기를 위하여 우리는 진보된 완화의료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다양한 전문인력 확보와 교육, 법적/제도적 지원, 지역사회의 적극적 참여와 재정적 지원이 동시에 포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지역사회 중심의 생애 말기 돌봄이 체계적으로 준비되어 삶의 보금자리 속으로 정착해야 할 시기가 도래했다.
마지막으로 축복받는 죽음은 무엇인가? 특별한 것은 없다. 필자가 생각하기에는 내게 익숙하고, 좋아하는 장소에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사는 것, 삶의 궤적을 돌아보면서 남아있는 사회적,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고, 편하게 내려놓는 것, 그리고, 통증 및 고통을 수반하는 기타 증상으로부터 해방하여 편안하게 죽는 것이 아닐까 한다.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죽음을 잘 맞이하는 방법. 그 의미를 탐구하는 인간의 노력은 참으로 고귀하다.
경문배 원장 (지앤아이내과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