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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인지 감수성’에 관한 용어 재검토

    황현호 변호사 (동대구합동법률사무소)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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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용어의 유래

    성립여부가 불분명한 성폭행 사건을 심리할 때에는 2018년부터 성인지 감수성이란 용어가 판결문에 자주 인용된다. 그 이전에도 "강간죄가 성립하기 위한 가해자의 폭행·협박이 있었는지 여부는 그 폭행·협박의 내용과 정도는 물론 유형력을 행사하게 된 경위, 피해자와의 관계, 성교 당시와 그 후의 정황 등 모든 사정을 종합하여 피해자가 성교 당시 처하였던 구체적인 상황을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하며, 사후적으로 보아 피해자가 성교 이전에 범행 현장을 벗어날 수 있었다거나 피해자가 사력을 다하여 반항하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 가해자의 폭행·협박이 피해자의 항거를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에 이르지 않았다고 섣불리 단정하여서는 안 된다"는 판결(대법원 2005. 7. 28. 선고 2005도3071 판결)을 비롯하여 유사한 판시를 한 사례가 많았지만, 성인지 감수성이란 용어를 사용하여 성폭행죄의 성립여부를 판단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2018년에 선고된 2개의 대법원 판결(대법원 2018. 4. 12. 선고 2017두74702 교원소청심사위원회결정취소 사건 판결, 대법원 2018. 10. 25. 선고 2018도7709 강간 등 사건 판결)이래로 성인지 감수성이라는 잣대가 성폭행죄 성립여부의 중심적인 기준이 되어 있다.

    성인지 감수성은 1995년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제4차 유엔 여성대회에서 사용된 후 국제적으로 통용되기 시작한 용어로 원문은 gender sensitivity이다. 이 대회는 형사사건의 법리적용문제를 다룬 대회가 아니었고, 여성의 사회적 차별을 방지하고, 여성의 권리를 신장하기 위한 유엔 차원의 대회였는데, 그 대회에서 사용한 용어가 25년이 지난 시점에서 우리나라 형사소송 실무상 성폭행죄의 성립여부를 판단하는 시금석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와 같이 성폭행 사건에서 검사나 피고인, 판사들이 변론이나 판결이유에서 자주 사용하고 있는 용어임에도 그 의미가 무엇인지 명확하지는 않다.


    2. 성인지 감수성의 뜻

    성인지 감수성(gender sensitivity)은 여러 가지 각도에서 설명되고 있는데, 판례에서는 성인지 감수성의 적극적 정의를 내린 바는 없고, 법원이 성희롱 관련 소송의 심리를 할 때에는 그 사건이 발생한 맥락에서 성차별 문제를 이해하고 양성평등을 실현할 수 있도록 '성인지 감수성'을 잃지 않아야 한다고 판시하여(대법원 2018. 4. 12. 선고 2017두74702 판결), 성인지 감수성은 '성희롱 관련 소송의 심리를 할 때에 그 사건이 발생한 맥락에서 성차별 문제를 이해하고 양성평등을 실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간접적으로 정의를 내렸다고 볼 수 있다. 그 뒤의 대법원 판결에서도 똑 같은 문장으로 표현하고 있다. 또한 피해자가 성폭력 등 피해당시 및 전후 상황에서 보이는 언동을 그가 처한 물리적, 사회적, 성차별 상황의 맥락 하에 평가함으로써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그르치지 않고 정확하게 사실인정을 해 낼 수 있는 능력이라고 정의하는 사람도 있다(이숙연, '성인지 감수성에 관한 단상', 법률신문 2019년 2월 21일자). 또한 나무위키 백과에서는 '성별 불균형상황을 인식하고 그 안에서 성차별적 요소를 감지해내는 민감성'이라고 정의를 하고 있으며, 시사상식 사전에서는 '성별 간의 차이로 인한 일상생활 속에서의 차별과 유·불리함 또는 불균형을 인지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이와 같이 판례, 학자, 문헌에서는 각자 약간씩 다른 정의를 내리고 있지만, 이와 같이 통일된 정의가 어려운 것은 성인지 감수성이란 용어 자체가 사실에 관한 기술이라기 보가 가치평가에 관한 기술이기 때문에 정의하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기술될 수밖에 없다.


    3. 번역상의 문제점

    처음으로 돌아와 과연 대법원에서 사용하고 있는 성인지 감수성이란 용어는 정확한 번역인지부터 검증을 해 보고자 한다. 1994년 유엔 여성대회에서 사용한 원문은 gender sensitivity인데 영어를 한국어로 직역하면 '성감각'이 되는데, 이렇게 되면 sexual sensitivity로 되어 성적 감각을 의미하는 것으로 오인될 수 있다. 한국어는 성교(sex)와 성별(gender)을 모두 성(性)이라고 표현하니 혼선이 생긴다. 성(sex)와 성별(gender)은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성(sex)은 남녀간의 성교와 남녀간의 성별을 모두 뜻하는 말이고, 젠더(gender)는 사회적 성별의 구분을 의미한다. 젠더와 구분되는 의미에서 성(sex)은 신체적·생리적 특징, 즉 염색체·유전자·호르몬·생식기 등과 관련하여 남성 또는 여성으로 성별이 분류되는 것을 말하고, 젠더는 사회적·문화적·심리적 특징, 즉 개개인의 성 역할·성 정체성·행동양식·사고방식 등과 관련하여 남성과 여성이 구별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즉 성(sex)은 신체적인 남녀의 구별이고, 젠더(gender)는 사회적인 남녀의 구별이라고 간단하게 정의할 수 있겠다. 이와 같은 의미에서 성(sex)은 생물학적, 신체적 차이로서 고정불변적인 개념인 반면, 젠더(gender)는 성별의 인식이 불변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문화적·사회적 상황에 따라 변화한다는 점을 전제로 하고 있다.

    젠더라는 용어를 성(性)이라는 한 글자 용어로 번역하기에는 너무 많은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영어에서 섹스(sex)와 젠더(gender)가 엄격하게 구분되어 사용되고 있고, 의미의 차이가 명확하게 감지되듯이 젠더를 한글로 적당하게 번역할 수 있는 용어가 현재까지는 없다. 그나마 젠더를 성(性)으로 표현하는 것보다는 성별(性別)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오류를 줄이는 길이다.


    4. 새로운 번역(사회적 성별감각)

    이와 같은 의미에서 gender sensitivity를 간단하면서도 의미에 가깝게 한글로 번역하면 '성별 감각'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대법원 판결에서 인용하는 성인지 감수성이란 용어는 매우 불확실한 의미를 갖는 번역이 되고 있다. 인지(認知)라는 말은 원문에도 없는 말인데, 번역과정에서 잘못 삽입이 된 것으로 보인다. 원래 1995년 베이징에서 열린 제4차 유엔 여성회의에서는 젠더주류화(gender mainstreaming), 젠더인지적(gender perspective), 젠더감수적(gender sensitive) 등 형용사 형태로 많이 사용되었다(신진화, '성인지감수성 판결을 위한 변명' 2019년 법관연수 어드밴스 과정 연구논문집, 사법연수원, 265면). 그 당시는 세계적으로 여권이 대폭 신장되는 시기이고 성별을 뜻하는 용어로서 섹스 보다는 젠더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을 강조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이 대회는 젠더주류화를 결의하였고(성인지적 관점에서 사회영역을 바라보고 성별간 불평등한 기존사회구조의 변혁을 목표로 새로운 사회를 모색하는 성평등 전략이며, 젠더이슈를 정부와 공공기관의 모든 의사결정과 실행에 고려하는 체계적인 절차와 메카니즘을 의미한다(김선화, '성인지감수성 판결의 의의와 영향' 2019년 법관연수어드밴스 과정 연구논문집, 사법연수원, 398면). 이에 따라 우리나라에서도 양성평등기본법 제14조에 따라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성주류화조치를 취하도록 선언적 규정을 두고 있다), 각국 정부로 하여금 젠더인지적 예산을 편성하도록 권고하였고(양성평등기본법 제16조), 젠더감수성 교육(gender sensitive training)을 하도록 권고하였다(양성평등기본법 제18조). 이 대회 이후 각국 여성정책이나 여성학계에서 'gender perspective'나 'gender sensitive'라는 단어를 많이 쓰다가 보니 번역에 있어서 불필요한 중복을 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 판결에서 말하는 성인지 감수성을 글자 그대로 영어로 번역한다면 gender perspective sensitivity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대법원 판결에서는 원문을 'gender sensitivity'라고 하면서도 번역은 성인지 감수성이라고 하고 있다. 대법원이나 여성학계에서 사용하고 있는 '성인지 감수성'이란 용어는 제4차 유엔 여성대회에서 나온 좋은 말은 다 끌어다가 단어를 조합한 듯한 느낌이 든다.

    또한 감수성이란 용어도 법률용어에서 사용하기에는 너무 감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가령 인권의식이 투철하고 타인의 인권을 존중하는 어떤 사람이 인권감각이 있다고 말하면 쉽게 이해가 되지만, 그 사람이 인권감수성이 있는 사람이라고 하면 이상한 말이 된다. 이러한 원문의 규정에 충실하고, 어감의 차이 등을 종합하여 gender sensitivity를 번역하면 '성별감각'이라고 하거나, 좀더 부연설명을 붙이면 '신체적 성별'에 대비되는 의미에서 '사회적 성별감각'이라고 하는 것이 학술적·객관적인 번역이라고 생각한다.



    황현호 변호사 (동대구합동법률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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