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1년 민사전자소송이 시행될 즈음, 새로운 기술에 대한 걱정과 거부감이 적지 않았다. 그 이후 불과 10년, 민사재판에서 종이로 송달하고 종이서류를 복사하는 일은 거의 사라지고 있다. 이제 전자기록을 출력하여 종이로 기록을 보고 있노라면 구세대로 취급받기 십상이다. 이렇게 80%가 넘는 민사사건이 전자소송으로 처리되는 성과를 거두었지만, 아직도 해결되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무엇보다 형사전자소송의 도입이 늦어짐에 따른 손실이 알게 모르게 상당하다. 불편함을 넘어서 충실한 심리에 직접 지장을 주고 있음에도, 형사전자소송의 제도화는 더디기만 하다. 기록을 일일이 복사해야 한다는 말을 들은 사건당사자들은 시대에 뒤떨어진 사법시스템에 기막혀 한다. 기록복사가 늦어져 재판이 공전되고 심리에 쏟아야 할 시간이 허비되는 사건이 허다하다. 형사합의부 판사들이 수천, 수만 쪽의 종이로 된 사건기록을 어떻게 함께 검토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전자소송의 도입으로 쉽게 해소될 수 있는 문제라면 신속한 결단이 필요하다.
민사에서도 획기적인 변화와 발전이 예상된다. 종래의 전자소송이 종이의 전자화에 중점을 두었다면, 앞으로의 전자소송은 재판 방식 자체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정보의 디지털화와 인터넷, 영상기술이 결합되어 시공간을 초월하는 새로운 형태의 재판이 탄생하게 될 것이다. 전대미문의 코로나19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법정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다수를 불러들이는 전통적인 재판 방식에서 벗어나는 재판을 구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최근 민사소송법이 개정되어 인터넷 화상장치를 통한 변론의 길이 열렸다(2021년 11월 18일 시행). 개정법에 따라 변론기일에서의 영상재판도 가능해졌으나, '교통의 불편 또는 그 밖의 사정으로 당사자가 법정에 출석하기 어렵다고 인정'되어야 하고, '당사자의 신청이나 동의'가 있어야 한다는 제약이 남아 있다.
우리는 생각보다 빨리 세상이 변하고, 적응이 필요하며 변화가 가능함을 경험하였다. 앞으로 영상재판이 더욱 확대되고, 언젠가는 완전한 가상법정이 운영되거나 온라인상으로 분쟁이 바로 종결되는 사이버재판의 시대가 올 것이다. 지금은 개정법의 요건을 적극적으로 해석·운용하여, 영상재판의 토대를 굳건히 다져 놓아야 할 때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그동안 당연시했던 재판의 원칙들이 흔들리고 새로운 난제가 등장할 것이다. 재판의 공개, 직접주의·구술주의는 어떻게 구현될 수 있는가. 현장성의 결핍은 실체발견에 지장을 주지 않을까. 해킹으로 인한 문제가 발생하면 어떻게 될까. 본인 확인과 인증은 담보될 수 있는가 등등. 분명한 사실은 이 모든 것이 회피의 대상이 아니라 극복의 대상일 뿐이고, 이제 선택의 여지는 없다는 점이다.
홍기태 원장 (사법정책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