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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징벌적 손해배상 입법, 신중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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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실손해의 수 배까지 배상을 명할 수 있게 하는 징벌적 손해배상 입법이 최근 들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이미 입법 완료된 법률로는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 '가맹사업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개인정보보호법', '제조물책임법',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 '공익신고자 보호법', '특허법', '부정경쟁방지법' 등 십 수 개가 있고, 21대 국회에서도 '금융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 개정안, '기업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안',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 등 수십 개 법안이 발의되어 있다. 그 중에는 징벌배상법안이나 상법 개정안처럼 민사적 불법행위 또는 상행위 전반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을 일반화하는 법안까지도 있다. 그런데 이처럼 징벌적 손해배상을 전방위적으로 도입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가.


    본래 징벌적 손해배상은 국가형벌권이나 행정규제권의 공백을 당사자가 민사적으로 시정하도록 하는 영미의 법제에서 비롯되었다. 이는 비난가능성이 매우 높은 위법행위에 대한 응징과 예방을 목적으로 하며, 따라서 가해자의 명백한 악의나 고도의 비난가능성이 증명되는 경우에 극히 예외적으로만 인정되던 것이다.

    대륙법계인 우리나라에는 생소한 이 제도가 이렇게 적극적으로 도입되고 있는 데에는 수긍할 만한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손해배상의 원칙에 따르면 모든 손해가 전보되어야 하지만, 증거수집 방법이 제한적인 우리 소송절차에서 원고가 손해액 전부를 증명하기란 대단히 어렵다. 다음으로, 일껏 증명된 손해액도 과실상계나 책임제한 등으로 삭감되는 경우가 흔하며, 위자료 액수도 체감상 상당히 낮아, 지금보다 높아져야 한다는 데에 어느 정도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끝으로, 징벌적 손해배상은 추가적인 예산 투입과 제도 정비 없이도 국가가 피해자나 약자 구제에 신경을 쓰고 있다는 정치적 메시지를 던져줄 수 있다.

    그러나 징벌적 손해배상은 가해자에게 형사적·행정적 징벌에 더하여 이중의 제재를 가하고, 원고에게 실손해를 넘어서는 우발적인 소득을 주며, 손해액 산정에서 법관의 재량을 지나치게 넓혀 판결의 예측가능성을 떨어뜨리는 문제점이 있다. 게다가 이미 입법되거나 발의된 징벌적 손해배상 조항을 살펴보면, 손해액의 산정에서 상한을 실손해의 3배 또는 5배로 하거나 아예 상한을 두지 않거나 매출액을 기준으로 하는 등 다양하여 아무런 일관성이 없다. 주관적 요건을 규정함에 있어서도 고의, 과실, 고의 또는 중과실 등 여러 경우가 있고, 그 증명책임도 혹은 피해자에게 혹은 가해자에게 지우는 경우가 착종한다. 이를 보면 제도의 의의와 효과에 관한 깊은 고민 없이 즉흥적인 입법이 행해지고 있는 것이 아닌지 우려된다.

    징벌적 손해배상은 그 취지상 가해자의 비난가능성이 극히 큰 경우로 한정되어야 하며, 주관적 요건의 증명책임을 가해자에게로 전환시키는 데에도 신중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손해의 완전배상을 위한 민사법의 근본적인 개혁에는 손을 놓은 채 징벌적 손해배상으로 손쉽게 문제를 해결하려 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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