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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法臺에서

    텅빈 법대에서

    김창모 부장판사 (수원지방법원)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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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년 만에 다시 녹음된 015B의 '텅 빈 거리에서' 주인공 손엔 물가 상승에도 여전히 동전 2개만 있는데, 법대에서를 마무리하는 제겐 무엇이 남았을까요? 이런 종류의 글을 쓴 게 언제인지 기억나질 않고, 원고지 5장반 지면에 글을 완성하는 게 어려워 각주라도 달고 싶었습니다. 제가 문어도 아닌데 자숙하지 않아 불편했단 비난도 있었는데 저의 수준 문제이니 양해해 주면 좋겠네요.


    안타깝게도 재판만 한 사람의 수준은 다른 분들보다 특별히 높지 않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판사는 기록만 읽고 법대에서 살며 세상을 살았다 착각합니다. 또한 판사는 법대에서나마 자신의 통제욕구를 실현할 수 있는데, 그 기분에 취해 과한 훈계를 하거나 변호인에게 증거의견 번의를 권유하기도 하지요. 더욱이 판사는 법대에서 다른 이들로부터 존중받고 '존경하는 재판장님'이라는 변론도 자주 듣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는 재판부에 대한 경의의 표시임을 명심하며 민법 제107조 단서 정도로 생각하고 넘깁니다.

    법대에서 이처럼 장기간 고상하고 우아한 삶을 살면 직업병이 발병하고, 사적영역을 공적영역으로 혼동하여 집에서 감히 판단을 하는데 당장 집에서도 '판사인줄 아냐'는 핀잔을 듣지요. 반대로 사적영역과 공적영역을 혼동하여 'Ah-Choo' 가사처럼 '맛있는 걸 해주고 싶은 그런 사람'이 생겼을 때 그 가사와는 달리 公私를 混藏任置하였단 의혹 제기 기사를 읽고, 그 무렵 주거침입 공개변론을 보면서 공동점유자 승낙 없이 주말에 자녀를 사무실에 데리고 와 간식을 먹이면 방실침입이 되는 건 아닌지 법리적으로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공동점유자께 여쭈니 그건 추정적 승낙이 있는 거라면서 점심은 전문 요리사가 만든 감바스, 빠에야를 갹출한 돈으로 먹으러 가자시네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을 순 없으나 항상 돌아보며 살아야겠습니다.

    과거 가을이 오면 호숫가 물결 잔잔한 누군가의 슬픈 미소도 아름다웠고, 조만간 체취를 부르는 통풍시트도 끌 수 있을 거 같은데, 지구의 자전축처럼 기울어진 저의 마음엔 계절이 불러온 온도차가 심하네요. 환절기에 모두 감기 조심하고 무엇보다 건강하시기를 빕니다. 아직 다 못한 말이 일천마디도 넘지만 이제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창모 부장판사 (수원지방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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