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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간 약, 파란 약

    이재홍 선임헌법연구관(헌법재판소)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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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광년. 우리의 이웃 태양인 '프록시마 센타우리'까지의 거리다. 달까지 1.3초만에 가는 빛의 속도로 4년 110일을 달려야 한다. 옆집까지가 이렇게 머니 그야말로 우리는 광활한 우주에 덩그러니 혼자 던져져 있다. 그런데 이 우주적 현실은 밤에만 보이고 낮에는 안 보인다.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의 주인공들처럼 낮에는 우리 모두 햇빛이라는 VR(가상현실)헬멧을 쓰고 살기 때문에 헬멧 밖을 볼 수가 없다. 밤이 되어 헬멧이 벗겨지면 비로소 캄캄한 우주가 보이고, 진짜 현실이 보인다.


    환한 낮은 그렇게 우리의 우주적 현실을 감추지만 어두운 밤은 그 고독한 현실을 밝게 드러낸다. 그래서인지 인도의 고전 '마하바라타'의 핵심인 '바가바드기타'는 이렇게 말한다. "뭇사람들의 밤은 지혜로운 사람에게 낮이다."

    아메리카 원주민의 지혜로운 속담은 진실을 이렇게 밝게 드러낸다. "지구를 잘 대해라. 지구는 조상님이 물려주신 것이 아니라 미래세대가 우리에게 빌려준 것이다." 현실을 직시하게 해주는 빨간 약과 꿈에 취하게 해주는 파란 약 중 무얼 먹을지 망설이는 '매트릭스'(1999)의 주인공처럼, 아메리카 원주민이 건네는 빨간 약을 먹어야 할지 고민이다. 그냥 파란 약 먹고, 식당에서 원숭이처럼 꽥꽥 뛰어다니는 애들 따위 무시하고 '행위능력' 갖춘 어엿한 어른들끼리 고상하게 즐기면 어떠랴.

    하지만 "더 많이! 한 번 더! Never Enough!"를 평생 외치며 쓰고 버리고 즐기고 또 즐기다가 "나 먼저 간다. 안녕! 니들도 해봐. 재밌어! 인생 별 거 없다. 참, 쓰레기는 두고 간다. 부탁해!"라는 말을 남기고 떠나자니 염치가 없다. '매트릭스'의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 RATM의 불 뿜는 노래 'Wake Up'이 터져 나왔다. 극장 안은 "선택은 빨간 약! 깨어나라구! Wake Up!"이라는 절규로 가득 찼었다. 그로부터 벌써 20년. 이제 정말 깜깜한 밤하늘 한 번 올려다보고, 아무것도 모른 채 쌕쌕 자고 있는 아이 얼굴 한 번 내려다보고, 빨간 약 꿀꺽 삼키고 깨어나야지. 이 책의 도움을 받아.

    ▶프리초프 카프라/우고 마테이(박태현/김영준 옮김), '최후의 전환'(원제: Ecology of Law, 헌법재판소 법사상연구회 강독도서)


    이재홍 선임헌법연구관(헌법재판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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