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덕 위에서 내려다본 은각사의 모습. 사찰의 정원을 따라 산기슭으로 올라가면 펼쳐지는 풍경. 여기서 전체의 구도를 감상할 수 있다.
10여년 전 초겨울, 저는 1년 9개월의 짧지 않은 군 생활을 마치고 전역을 했고, 그 기념으로 일본 교토에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그 이후에도 수차례 해외여행을 다녀왔지만, 그 때의 여행이 아직도 잊혀 지지 않는데, 그 이유는 그 당시 군대를 갓 제대한 저의 신체적, 정신적 컨디션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주변 풍광과 자연스레 조화이룬 은각사도
눈에 선해
상당한 기간 속세를 떠나 있었기에 호기심 많고 청결한 눈은 새로운 사물을 신선하게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고, 구보와 훈련으로 단련된 체력은 하루 종일 피로함을 느끼지 않고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또한, 지금은 별다른 감흥도 없지만, 만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은 ITX호 객차 의자의 천과 플라스틱이 만나는 부분의 야무진 마감이나, 공공 조형물에서 느껴지는 창의성에 감탄하면서, 그런 물건들을 신경 써서 만든 사람으로 하여금 보람을 느끼게 할 수 있는 그런 모습이었던 것입니다.
게다가 당시 동행했던 의형(義兄)은 일본의 역사와 문화에 통달한 분이라, 가는 곳마다 역사와 유래를 알려주어 여행의 즐거움이 배가되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쿄토 여행의 기억은 아직까지도 저에게 특별히 좋았던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간사이국제공항에 도착한 후, JR하루카 특급 열차를 이용하여 쿄토역에 내렸습니다. 시간이 아까웠던 우리는, 료칸에 도착하자마자 짐을 풀고 나와 1.2 km에 이르는 철학의 길을 따라 도보로 이동하여 은각사(긴카쿠지)에 이르렀습니다.
은각사의 입구는 기묘한 구조로 만들어 놓아, 외부에서는 은각사 건물이 보이지 않도록 되어 있습니다.
입구를 들어가면 곧바로 은각사 건물이 등장하는데, 유려한 곡선의 테두리가 주는 조화로움이 가슴을 뭉클하게 만듭니다. 이름은 은각사라도 실제 은박이 입혀진 것은 아니라는 말을 듣고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생각보다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은각사(銀閣寺)의 모습
게다가 은각사는 건물만 동떨어지게 예쁜 것이 아니라, 주변의 다른 건물과 나무, 담장, 연못과도 자연스러운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은각사에서 정원을 따라 쭉 들어가면 산기슭으로 올라가는 길이 나오는데, 이 위에서 내려다보면 전체의 조화를 제대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
특히 인상에 남았던 것은 모래 정원인 가레산스이(かれさんすい,Zen garden)였습니다. 만다라와 같이 무너지기 쉬운 질서정연한 바닥 모래의 무늬는, 위로는 고즈넉한 초저녁의 하늘과, 눈앞으로는 낡은 나뭇결이 거뭇하게 세월의 흔적을 담고 있으면서도 전체적으로 단단한 테두리를 지키고 있는 건물과 서로 어울려 부족함이 없는 미의 마감을 담당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금각사(킨카쿠지)는 쿄토의 다른 이름난 문화유산들과는 다소 떨어진 위치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금각사의 전경. 입구를 통과해 호수 앞에 다다르면 나타나는 위압적인 아름다움이 탄서을 자아낸다. 1955년 복원이 이루어져 전체적으로 금박이 씌워졌다.
금각사는 '금각사 말고는 볼 것이 없다'는 말이 있는데, 이 말만 믿고 쿄토에서 금각사를 둘러보지 않는다면 후회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본의 소설가 미시마 유키오는 '금각사' 라는 소설에서 주인공이 금각사를 처음 대면하는 장면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습니다.
"그토록 꿈에 그리던 금각은 너무도 싱겁게 내 앞에 그 전모를 드러내었다...(중략)... 나는 이리저리 각도를 바꾸어, 혹은 고개를 기울여 바라보았다. 아무런 감동도 일지 않았다. 그것은 낡고 거무튀튀하며 초라한 3층 건물에 지나지 않았다. 꼭대기의 봉황도, 까마귀가 앉아 있는 것처럼 보일 뿐이었다. 아름답기는커녕 부조화하고 불안정한 느낌마저 들었다. 미라는 것은 이토록 아름답지 않은 것일까, 하고 나는 생각했다"
‘금각사 말고는 볼 것 없다’는 말처럼
안 봤으면 후회
금각사는 1950년 이전에는 금박이 많이 벗겨져 있는 모습이었다고 합니다. 1950년 한 승려의 방화로 전체가 소실되었는데, 이후 1955년 복원이 이루어지면서 전체적으로 금박이 씌워졌습니다. 미시마 유키오의 위 표현은 복원 이전의 금각사를 대상으로 한 듯합니다.
그러나 금각사는 결코 싱겁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금각사를 보기 위해서는 입구를 통과하여 어느 정도의 거리를 걸어가야 하는데, 금각사가 보이는 호수 앞에 다다르면 그 경치가 와! 하는 탄성을 자아내게 하며, 정신없이 사진을 찍게 만듭니다. 다른 사람들도 똑같은 지점에서 사진을 찍느라 북새통을 이루는 것을 보면 다들 똑같이 느끼는 것이 확실합니다.
다만 금각사의 건물과 소로들은 전반적으로 넓은 느낌이 들고, 감동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오로지 금각사만이 위압적으로 돌출된 아름다움을 과시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복원 전의 금각사와, 복원 이후의 금각사를 모두 보았던 일본의 대표적인 탐미주의 소설가인 미시마 유키오가 탐닉의 대상을 은각사나 다른 건물이 아니라 금각사로 정한 것도 이런 돌출된 아름다움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미시마 유키오의 정치적 견해를 따르는 것은 아님을 밝힙니다).
교토 5층 탑
‘혼케 오와리아’ 식당에서 맛 본
소바의 맛은 아직도…
쿄토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17개나 있다고 합니다. 쿄토에 있던 3박 4일 동안 최대한 많은 곳을 보고자 노력하며 료안지(龍安寺), 쿄토고쇼(京都御所), 헤이안진구(平安神宮), 키요미즈데라(淸水寺), 니조 성(二條城), 산쥬산겐도(三十三間堂), 쿄토 5층탑, 초라쿠칸(長樂館) 등을 둘러보았고, 1465년에 문을 열었다는 메밀국수집 혼케 오와리야(本家尾張屋)에서 쿄토5층탑을 본따 만들었다는 호라이 소바도 먹어보았으나, 들르지 못한 곳이 더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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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케 오와리야의 대표 메뉴인 호라이 소바
장기간의 코로나 사태로 인해 해외로 나가지 못하게 되면서, 마지막으로 해외여행을 가 본 것이 언제인지 가물가물합니다. 아직 가보지 못한 나라들이 훨씬 많습니다만, 일본의 쿄토는 언젠가 다시 한 번 꼭 가보고 싶은 곳으로서, 저의 버킷 리스트에 올라가 있습니다.
키요미즈데라(淸水寺)
산쥬산겐도(三十三間堂)
정구성 변호사(법률사무소 제이씨엔파트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