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날씨가 갑자기 쌀쌀해졌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겉옷을 입을지 말지 고민하던 꽤 더운 날씨였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다가온 초겨울 날씨가 반갑기도 하고, 또 놀랍기도 하다. 옷장 정리를 미뤄왔는데, 더이상은 미룰 수 없게 되었다. 얇은 소재, 짧은 기장의 옷들로 가득한 서랍을 비우고 포근한 소재의 니트로 채웠다. 마 소재, 홑겹의 자켓을 접어 넣고, 도톰한 소재의 코트와 패딩점퍼를 꺼내 걸었다. 계절에 맞는 옷들로 정리된 옷장을 보니 기분이 참 좋다. 이 계절에 입을 옷을 이미 꽤 많이 갖고 있다는 것도, 또 의외로 구비하고 있지 않아 구입해야 할 옷들이 있다는 것도 비로소 정확히 깨닫게 된다.
깨끗하게 정리된 옷장을 보니, 생각나는 것이 있다. 업무용 컴퓨터의 바탕화면이다. 나는 보통 프로젝트, 소송, 자문, 교육·참고자료, 기타 자료. 이렇게 5개의 대분류 폴더를 두고 하부 폴더를 관리한다. 파일명에는 앞뒤로 날짜와 버전을 기재한다. 일일이 열어보지 않고도 내용을 파악할 수 있도록. 문제는 항상 이대로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적어도 반기에 한 번은 마치 계절을 맞아 옷장을 한번 뒤집어 정리를 하듯, 그렇게 자료들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바쁜 날에는 바탕화면 한가득 파일을 저장해 놓고 퇴근하기도 하고, 폴더를 바꾸어 저장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 상태를 오래 방치하면, 다음에 검토 이력, 관련 서식, 참고자료를 이미 갖고 있으면서도 찾는 데 시간을 많이 허비하게 된다. 당장 큰일이 나지 않더라도 폴더, 파일을 정리하는 데 시간을 쓰는 이유다.
드라마로도 만들어졌던 만화 '미생'. 드라마 초반에 주인공 장그래가 전달받은 업무용 노트북에 저장된 자료들이 뒤죽박죽 섞여 있어 새로 마인드맵을 짜서 폴더트리를 만들고, 카테고리 별로 문서를 나누어 넣었다가 혼나는 장면이 있었다. 처음에는 회사의 매뉴얼과 다른 방식이라는 이유로 선배의 꾸지람을 듣지만, 장그래가 새로 고안한 방식이 합리적이고 효율적이어서 회사 사람들이 장그래를 재평가하는 계기로 작용했다는 내용이었다. 그 장면을 보면서 장그래의 폴더트리, 문서정렬 방법을 좀 더 구체적으로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매번 새로 정리한 옷장처럼, 내 바탕화면의 자료들도 더 보기 좋게, 찾기 좋게 정리할 획기적인 기술이 있을까. 4분기가 가기 전에 한번 심사숙고 해봐야겠다.
김화령 변호사 (서울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