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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마민소소송법산책③ 민사재판이 현재의 직권심리절차로 오기까지

    강현중 변호사 (前 사법정책연구원장)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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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앞에서

    로마의 민사재판은 크게 나누어서 세 개의 모습이 있다. 먼저 법률소송절차로서 이것은 기원전 3세기 무렵 나타난 방식서 소송절차와 병존하다가 이에 의해서 밀려나서 기원전 1세기 무렵 거의 소멸되었다. 위 2개의 소송절차는 법무관이 관장하는 법정(法廷)절차와 심판인이 주재하는 심판절차라는 절차의 2분할제를 채용하였는데 이것을 로마민사소송의 통상절차라고 한다. 이 통상절차는 절차의 2분할제를 채택하지 않은 특별심리절차와 로마제정 초기까지 병존하다가 불사용으로 없어지게 되었다. 특별심리절차에서는 전통적인 절차의 2분할제는 폐지되고 관리로서의 재판관이 심리와 판결을 모두 직권으로 행하여 직권심리절차라고 부른다.


    2. 법률소송절차

    법률소송절차는 legis actio라고 하는데 'lex(법률)에 기초한'이라는 의미로 이해된다. 이 절차의 특징은, 법정에서 당사자가 일정한 형식으로 동작을 하면서 형식어를 말로 언명하는데 있다. 이 형식은 매우 엄격해서 원고가 이를 조금이라도 잘못하면 패소할 수밖에 없었고, 일사부재리의 원칙상 그 잘못을 고칠 기회도 없었다.


    3. 방식서 소송절차
    (가) 뜻

    이 절차는 말로 형식어를 언명하지 않고, 방식서(formula)라는 서면을 사용하는 소송이다. 그로 인해 재판은 형식적인 변화 뿐 아니라 실질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법률소송은 로마시민의 전용이었는데 방식서소송은 자유인으로서 로마의 비 시민도 이용이 가능하였다.

    (나) 법정절차(in iure)
    (1) 관계자
    (a) 1명의 법무관

    그는 민회에서 선출된 1년 임기의 정무관으로서 집정관 다음의 높은 지위에 있다. 재판을 관장하는 권한의 근거는 법무관이 보유하는 명령권이다. 방식서소송이라는 것은 법률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이 명령권에 의한 절차이다. 이점에서 법률에 근거한 법률소송과 비교하여 법적 기반이 약하다고 볼 수 있으나 매년 교체되는 역대 법무관에 의해서 충실하게 유지되었다. 법무관은 법률 전문가가 아니지만 법학자로부터 사적 의견을 받아 법정 심리를 하였는데 법무관직은 로마 정치가들의 필수적인 출세코스 였다.

    (b) 원고 및 변호인

    원고는 로마시민인 것이 보통이지만 외국인도 자유인은 원고로서 구제를 구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방식서 소송은 외국인들의 쟁송에서 발전한 것이다. 변호인은 주로 심판인절차(apud iudicem)에서 활약하는데 변론술(rhetoric)을 전문적으로 훈련받은 경우가 많다.

    (c) 피고 및 변호인

    시민이 피고로 되는 것이 보통이지만 외국인이 피고로 될 수도 있었다.

    (2) 절차의 내용

    (a) 원고는 미리 달력에 정해진 개정일에 피고를 대동하고 포름에 있는 법무관 앞에 출석한다. 출석에 응하지 않는 피고에 대해서는 간접적인 출석강제 절차가 마련되었지만 직접 출석을 강제할 수 없었다. 원고는 소환출석에 앞서 무엇이 법정절차의 대상인지를 피고에게 알려주지 않으면 안 된다.

    (b)
    원고는 법무관 앞에서 피고에게 소송의 대상이 되는 청구를 하고 이에 대한 소권의 부여를 신청한다.

    (c)
    법무관은 원고의 신청을 듣고 소송의 형식적 전제요건을 심사한다.

    ① 원고의 신청이 잘못되었다고 법무관이 고려할 때에는 처음부터 소송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법무관은 시민법 규정이 이미 존재하지만 원고의 청구가 어디를 보더라도 부당하여 법규를 문제의 사건에 적용하지 않는 것이 형평에 합치하다고 스스로 생각하면 자신의 직무상 책임으로 원고의 신청을 거부할 수도 있다.

    ② 법무관은 피고가 원고의 신청을 다툴 경우에는 그러한 다툼을 해결하기 위한 소송의 승인여부를 자신의 책임으로 결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경우 법무관은 당사자가 신청한 그 사건이 현실적으로 존재하는지 여부를 문제 삼을 수 없는데 이를 조사하는 것은 심판절차에서 심판인의 몫이기 때문이다.

    (d)
    법무관은 양쪽 당사자가 소송을 수행할 용의를 보이면 소권을 부여하고 당사자의 합의에 따라 심판인 혹은 그에 상당하는 사람을 선임한다.

    (e)
    법무관은 양 쪽 당사자와 협의하여 그 구체적 사건에 적합한 방식서(formula)를 작성하는데 이것은 다툼의 요점을 명학하게 하고 심판인이 어느 논점에 관해서 어떤 판결을 할 것인가를 지시하는 공적 서면이다.

    (f)
    법무관은 심판인을 임명함과 함께 방식서의 승인으로 소송대상을 확정하여 쟁점결정(litis contestatio)을 하는데 이것으로 그 역할은 끝이 났다.

    (다) 심판인 절차(apud iudicem)
    (1) 심판인

    양쪽당사자가 한 사람의 사인(私人)을 심판인으로 선임할 것을 합의하면 법무관은 그를 심판인으로 임명한다. 그 이외의 방법에 의하여 심판인을 선임하려고 할 때에는, 각 시대마다 다르지만, 일정한 절차를 밟아야 했다. 심판인은, 당초에는 원로원 계층의 사람들만 되었는데 귀족과 제2계층인 기사계층의 정쟁(政爭)결과 기원전 2세기에는 기사계층이 일단 전면적으로 심판인 지위를 독점하였다. 그러나 기원전 1세기에 다시 원로원 계층자의 손에 그 지위가 돌아왔다. 최종적으로는 기원전 70년에 양 쪽의 혼합체가 심판인 명부를 구성하게 되었다. 아무튼 심판인은 사인이다. 그러나 그 사회적 지위는 특히 원로원 계층자인 경우가 매우 높았다. 통상의 사건에서 심판인은 1명이지만 특정사건에 관해서는 복수의 심판인이 그 임무를 맡았다. 이 심판인 들은 최종적으로 구속력 있는 판결을 할 권한을, 명령권을 보유한 법무관으로부터 부여받아 활동하기 때문에 사인이더라도 특별히 공적인 성격이 있었다.

    (2) 절차
    (a)
    심판인은 방식서가 정한 바에 따라서 사실심리를 한다. 방식서에 기재된 사항 이외에는 융통성이 없었다. 입증은 국가가 이에 협력하지 않은 양쪽 당사자의 고유한 일로써 심판인은 자유심증으로 심증을 형성하였다.

    (b)
    이 방식서에 따른 판결서는 모두 원고가 아니라 피고 중심으로 작성하는 것이 특징이다. 원고 승소판결은 '피고 유책(condemnare)판결', 원고청구기각 판결은 '피고 면소(absolvere)판결'이라 하였고, 재판은 '(피고에 대한) 제재(制裁)'라고 하였다. 유책판결의 경우에는 언제나 금전판결(condemnatio pecuminaria)이었다. 따라서 확정금액의 청구가 아닐 때에는 금전으로 평가하여야 한다는 뜻을 방식서에 기재하였다.

    (c)
    사인인 심판인이 판결하였으므로 이에 대한 상급 심판인을 생각하지 못하여, 상소제도는 애초부터 인정되지 않았다.


    4. 직권심리절차
    (가) 뜻

    통상소송에서는 국가의 사법 권력을 장악한 법무관 등이 소송의 전반부 밖에 관여하지 못하고 어느 의미에서는 지극히 중요한 사실 문제를 판단하는 임무를 사인인 심판인에게 맡겼는데 직권심리절차에서는 관리인 재판관이 일관하여 심리와 판결을 행하고 집행도 관여하였고, 이것이 오늘날 우리나라 재판의 원형이 되었다.

    (나) 장점

    여기서는 분쟁을 해결할 때 종래의 틀을 벗어나서 합리적이고 적절한 결과를 이끌어내기 위한 처리를 지극히 신속하게 행할 수 있었다. 전문적 지식을 갖춘 한 사람의 재판담당자에게 심리에서 판결까지 전 과정을 담당하게 하였는데 그는 황제로부터 매우 광범한 자유재량을 받아서 경쾌하게 재판사무를 취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상소제도를 채용하기 때문에 최종적인 결과가 나올 때까지 시간이 걸리지만 황제가 법전문가인 법학자의 조언에 따라 정당한 재판을 하는 이상(그 예외의 경우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최종적으로 공정한 판단을 기대할 수 있었다. 로마에서는 구제(救濟)의 여러 가지 방법가운데서도 사법적 구제를 중심으로 하지만 구제의 주체가 황제로 일원화됨으로써 여러 가지 이점이 생겼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지급까지 구제의 대상이 아니었던 사안(事案)에서도 황제 개인의 결단에 의해서 구제의 기회를 준 점이다. 그로부터 국민은 황제에게 구제를 구하고, 황제는 은혜로 국민에게 사법적 구제를 준다는 인식이 생겼다. 물론 공화정하의 방식서 소송절차에서도 사람들은 구제를 구하기 위해서 법무관에게 청원하기도 하였으나 1년 임기의 법무관의 구제에는 한계가 있었다. 장기통치를 하는 황제들이야 말로 은혜부여의 큰 의미가 되었다.

    (다) 재판관

    재판관은 이념상으로는 황제 1인 뿐이지만 당연히 그는 부하 관리에게 임무를 대행시키는 것이 통례였다. 그의 관리에는 공화정의 전통을 이어 집정관이나 법무관이라는 정무관인 사람과 황제 직속의 부하들이 있는데 최상위의 관료(여기에는 법학자도 있다)에서 지방 관리에 이르기까지 여러 종류가 있고, 느슨한 피라미드의 형태를 이루었다. 또 소송당사자는 재판관을 받들어야 하고 이를 기피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다. 이와 같은 소송구조에서 예외적인 경우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하급자의 판결에 대해서는 황제에 가까운 지위의 상급자에게 상소가 자연스럽게 인정되었다.

    (라) 재판절차

    궁극적으로는 황제의 권력에 의하지만 외견상으로는 황제 개인이 발포하는 칙법이 제판관을 구속하였다. 이것은 법률과 소송방식서가 각각이고, 법률소송과 방식서소송이 전개되는 틀이 다른 것과 대비된다. 물론 황제 자신이 재판을 할 때에는 칙법 등 법규범에는 반드시 구속되지 않지만 구체적인 판결은 실체법규인 칙 법을 생성하는 기반을 이루어서 현대의 판례법 역할을 하였다.


    강현중 변호사 (前 사법정책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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