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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法臺에서

    진술 신빙성 판단의 무거운 짐

    차기현 판사 (광주지법)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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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사법관으로 일하기 전까지는 '군대 다시 가는 꿈'이 가장 끔찍했다. 법정에서 거의 매주 '진술의 신빙성' 문제로 씨름하는 처지가 되고부터 최악은 바뀌었다. 범행을 부인하는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자의 진술'을 증거로 유죄 판결하고 법정구속까지 했는데, 그 피고인이 항소심에서 무죄로 풀려나 방청석에 앉아 나를 노려보는 꿈. 생각만 해도 모골이 송연하다. 아직 현실이 된 적은 없어 그나마 위안이다.


    무고한 사람에게 성범죄자의 낙인을 찍는 것은 그 사람의 인생을 끝장내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더욱 피해자의 진술에 불합리하거나 모순되는 부분은 없는지, 혹시 피고인을 모함할 숨겨진 동기는 없는지 돌다리도 열 번 더 두드려본다.

    그렇지만 종종 '지적 장애인이 모든 진술을 조리 있게 한다는 게 더 이상하지 않나?', '무고를 하려면 아예 말을 더 완벽하게 맞춰오지, 이리 허술할까?', '피해자 입장에서 생각해보라지 않나' 등등 온갖 번민 속에 결론을 못 내리고 밤잠을 설치다 결국 악몽까지 꾼다.

    '여자의 눈물'만으로 남자들은 감옥에 간다는 식의 선동이 독버섯처럼 퍼져나가는 것을 보면, 더 꼼꼼히 살피지 못한 판사들 책임인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그렇지만 실제로는 성폭력 피해자가 그냥 아무 말이나 하면서 그저 눈물짓고 앉아있다고 그냥 유죄 판결이 나오는 게 아니다.

    경찰, 검찰, 법원을 순서대로 거치면서 혹독한 검증이 기다리고 있다. '무고 대응 전문'을 표방하는 변호인이 법정에서 피해자를 들들 볶는 모습을 한 번이라도 제대로 본 사람이라면 '여자의 눈물' 운운하기 그리 쉽지 않다.

    온갖 시련을 끝내 이겨내 '일관되고 구체적이며, 불합리하거나 진술 자체로 모순되는 부분이 없고, 거짓 진술을 할 특별한 이유도 찾을 수 없다'는 것에 일말의 합리적 의심도 남아 있지 않을 때라야 비로소 '피고인을 유죄로 하기에 충분한 증거'라는 면류관을 쓴다.

    진술 신빙성 판단의 짐은 늘 무겁다. 그렇지만 단 한 명의 억울한 사람도 나와서는 안 되기에, 다시 기록을 앞뒤로 맞춰보며 고민하고 또 고민할 수밖에 없다.


    차기현 판사 (광주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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