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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사의 역할은 무엇이어야 하나?”

    - 윤성근 판사의 칼럼집을 읽고 -

    오세빈 변호사 (전 서울고등법원장, 법학박사)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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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최근에 평소에 자주 대화를 주고받는 강민구 서울고법판사(여기서 법원장이나 부장판사와 같은 직함은 모두 생략하고 다같이 판사로 부르고 싶다)로부터 윤성근 전 남부지법원장(현 서울고법 부장판사)의 칼럼집 “법치주의를 향한 불꽃”이라는 책을 다소 생소한 “전자책”으로 전달받아 노트북 화면을 통하여 읽어내려가면서 깊은 충격에 빠지고 말았다.


    내가 아는 윤성근 판사는 준수한 외모에 해박한 지식과 원만한 인격을 갖춘, 부지런하고 건강한 ‘천상 판사’로 비쳐졌는데, 근자에 병고에 시달리면서 일상생활도 어려운 지경에 처하였다니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는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판사’라는 무거운 짐이 지난 수십년 간 격무에 시달린 육체에 면역기능을 약화시켜 질병을 키우게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의 제목인 “법치주의”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은 한없이 냉정하고 차가운 여운을 준다. 법치(法治)니 덕치(德治)니 하는 말의 정치적인 의미나 “인간의 지배에서 법의 지배로”라는 구호가 주는 중압감이 차가운 이성과 치열한 법리의 논쟁을 떠오르게 하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윤판사의 칼럼집은 대단히 놀랍게도 위 제목과는 달리 한없이 따뜻한 책이라는 인상을 준다.

    책의 앞부분에 등장하는 각계 각층의 인사들이 전하는 따뜻한 사랑과 격려의 인사말들은 윤성근판사의 지나온 여정들이 전혀 외롭지 않았다는 점과 윤판사의 생각과 행동이 그와 인연을 맺어온 많은 사람들에게 선한 기운과 감동적인 영향력으로 충분히 기여했다는 확신을 주기에 충분하다.

    더구나 동료 법관인 강민구판사가 그의 탁월한 ‘도깨비 검색’ 프로그램을 사용하여 불과 48시간만에 전광석화(電光石火)와도 같이 ‘번갯불에 콩 튀기듯이’ 윤판사가 지난 10여년 간 일간신문에 기고한 칼럼과 강연원고, 윤판사의 판결내용이 보도된 언론기사 등을 수집하여 300여 페이지에 달하는 책으로 엮어낸 열정은 가히 갓 구워낸 쿠키(COOKIE)와도 같은 따끈하고 달콤하면서도 한편으로 비장한 기운이 감도는 신비로운 역작으로 탄생시킨 것이다.

    윤판사가 이 책에서 선보인 어록 중 단연 백미는 “우리는 누구나 소수자인 동시에 다수자다”라는 외침이라고 본다.

    우리는 평소에 나의 생각과 행동이 이 사회에서 다수가 가지는 것과 부합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나의 생각이 우리 사회에서 소수에 속한다는 자각이야말로 이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켜야 할지 또는 내가 어떻게 생각을 바꾸거나 상대방을 이해하고 설득하여야 할지를 고심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윤판사가 우리나라 헌법이 채택한 법치주의에 대하여 내린 정의는 단순히 ‘다수당의 국회 결의에 의해 제정된’ 법률에 근거한 무조건적인 통치방식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 그리고 기본적 인권의 보장’이라는 헌법적 가치를 구현하는 ‘법의 정신’에 따르는 사회를 의미한다.

    이는 ‘입법만능주의’에 빠져 국민의 생활방식과 경제적 이해관계를 왜곡시키는 다수당의 횡포에 대하여 내리는 준엄한 꾸짖음으로 받아들여진다.

    또한 이른바 ‘선출된 권력’이 입법과 행정에 더하여 사법적 권력까지 장악하게 되면 오직 다수의 결정이 무제약적인 지배력을 행사하는 비민주적 전체주의 사회로 전락할 수밖에 없고, 따라서 사법부는 선거에 의하지 않고 별도로 국민으로부터 위임을 받은 ‘전문가집단’인 법관에게 부여한 것이라는 ‘사법권독립’에 대한 근거와 믿음은 강한 설득력을 준다.

    그리고 다수의 횡포가 가져온 ‘인민재판’의 폐해나 ‘실정법 우선의 형식적 법치주의’가 가져온 인권의 폭압사례를 역사적으로 논증함으로써 사법부가 ‘인권의 보루’로서 역할과 믿음을 확립하여야 한다는 주장은 모든 법관이 경청하여야 할 철학이라고 생각한다.

    이에 덧붙여 우리나라 사법부가 지향하여야 할 국제적 분쟁에 대한 대비책이야말로 우리의 미래를 결정할 중대한 문제점을 짚어준 것이다.

    윤판사가 담당한 국제거래, 상사사건의 판결례에서 보듯이 우리나라의 기업활동이나 무역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짐에 따라 한국법원의 판결도 셰계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는 현실을 직시하고 이에 대비할 전문법관의 양성과 해사, 상사사건을 담당할 전문법원의 설치가 시급하다는 점을 일깨워준 점도 높이 평가하고 싶다.

    우리나라 사법부의 미래를 선도하여야 할 윤성근판사가 우리나라 사법발전과 국민의 인권보장이라는 법관으로서의 소명에 부응할 수 있도록 부디 건강한 모습으로 법정에서 만날 날이 찾아오기를 간절히 기원하고, 진심으로 신의 가호를 빈다.


    오세빈 변호사 (전 서울고등법원장, 법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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