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요즘 널 위해 뭘 하니?"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 생활'에서 실력과 인성 모두 최고인, 항상 바쁜 나머지 자기를 챙길 틈 따위는 없을 것 같은 의사 익준에게 친구이자 동료 의사인 송화가 묻는 말이다. "너랑 밥 먹는 거"라는 익준의 간질간질한 대답에 잠시 흐뭇했다가, 나는 요즘 나에게 뭘 해주고 있나 되돌아본다. 예전에는 주로 잠, 산책, 여행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가는 탓인지 자기 전의 걱정을 잊을 만큼 오래 자기도 힘들고, 자고 일어나서도 개운하지 않은 경우가 점점 늘어난다. 팬데믹이 시작된 작년부터는 여행도 가기 어렵거나 꺼려진다. 유튜브로 방구석 세계여행에 나서보지만, 맨눈으로 보는 세상과 렌즈를 통해 보는 세상은 참 차이가 크구나 싶다. 그래도 산책은 이전처럼 할 수 있어 다행이다. 멀리 돌아다니지 않고 동네 산책에 주력하다 보니 동네 곳곳의 숨은 벚꽃 명소, 단풍 명소도 알게 되었다. '궁세권'인 재판소에서 근무하는 덕에 점심시간을 이용한 궁궐 산책의 즐거움도 누린다. 한복 입은 청년들과 외국인들이 사라진 고궁 전각을 본의 아니게 독점이라도 하는 날은 안타까움과 즐거움이 마음속에서 싸우다 결국 즐거움이 이기고 만다. 코로나로 힘들고 지친 사람들이 많은 시기에 내 마음을 어떻게 돌볼 것인가 하는 고민은 사치일 수도 있지만, 주변을 돌아볼 수 있게 하는 에너지도 결국은 나 자신으로부터 나오는 것 같다. 익준이도 송화랑 밥을 먹어서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보듬을 수 있는 힘을 얻는 거란 생각이 든다. 법조인의 일이란 것이 생사의 경계를 지키는 일까지는 아닐지 몰라도, 늘 분쟁의 언저리에서 타인을 돌보다 보면 지치는 순간이 생각보다 자주 찾아온다. 생활인으로서 밥을 벌어야 하는 지겨움도 적지 않을 것이다. 올해가 다 가기 전 스스로에게 행복을 주는 소소한 방법을 고민할 수 있기를, 그리고 주변의 친구들에게 송화와 같은 질문을 던지며 마음을 살펴줄 수 있기를 바란다. 성왕 선임헌법연구관 (헌법재판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