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참여재판, 그림자배심 프로그램(실제 배심원으로 선정되지 않았지만 국민참여재판과 같은 배심원 역할을 체험)을 진행한 적이 몇 번 있다. 참여재판을 진행할 때마다 배심원으로 참여한 분들이 엄청난 열정을 가지고 재판 절차에 참여한다는 점을 느끼게 된다.
그림자배심으로 진행한 사건 중 마트에서 몇만 원 상당의 물건을 훔치다가 도주하면서 뒤로 세게 닫은 마트 유리문에 직원이 상해를 입은 사안이 있었다. 강도상해죄로 기소되어 유죄로 인정될 경우 법정형 하한이 징역 7년인 사안이었다.
그림자배심원으로 참여한 분들과 함께 실제 형사재판을 방청한 후 회의실로 돌아와 사안에 관하여 증거관계, 유죄로 인정될 경우의 양형 등에 관하여 간단하게 설명을 하였다.
배심원들은 고민에 빠졌다. 절도 전력이 있기는 하지만, 작량감경을 하더라도 징역 3년 6월의 형은 너무 과하다는 생각이었다. 배심원들은 다른 판단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물었고, 상해가 도주 과정에서 체포를 면하려는 중 발생한 것인지 여부에 따라 법리적인 판단을 할 수 있다는 추가적인 설명도 하였다.
형량에 맞춰 죄가 되는지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설명하기도 하였지만, 배심원들은 다소 법리를 벗어나더라도 절도와 상해로만 인정하자는 의견이 다수였다. 그림자배심으로 참여한 시민들인데도 그 사건에 관하여는 담당 판사 이상으로 많은 고민을 하고, 피고인에 대한 적정한 형을 정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모습이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사회적 관심이 많은 사건의 언론 기사 댓글에서도 알 수 있듯이 국민들의 형사재판에 대한 참여 욕구는 갈수록 커지고 있고, 정치에 대한 직접 참여와 마찬가지로 그 추세는 더 강해질 듯하다. 현실적으로 모든 형사사건을 참여재판으로 진행하기는 어렵지만, 참여재판에 참여한 시민들의 판단자로서의 경험은 그 어떤 체험과도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값지다. 배심원으로 참여했던 분들은 다른 사람의 인생에 관하여 판단하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어려운 일인지 몸소 체험하고, 또한 배심원들의 의견은 판결을 하는 판사들에게도 신선한 자극을 준다.
최근 재판에 대한 신뢰가 낮아진 상황에서 국민들에게 형사재판에 직접 배심원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하는 것이 절실하다는 생각이 든다.
권혁준 판사(서울중앙지방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