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년에 '악마판사'란 드라마가 방영된 바 있다. 주변에서 이 드라마를 어떻게 보았는지 묻는 사람들이 많았다. 드라마 속에서의 판사 '요한'은 경제적·사회적 권력을 지닌 사람들을 국민심판대에 올려 통쾌하게 응징을 한다. 이런 판사 '요한'의 모습에 시청자들은 열광하였다.
드라마와 달리 실제 판사는 검사가 기소한 사건에 관하여만 유·무죄와 양형을 정하고, 여론이 아닌 증거에 따라 판단한다. 어떻게 보면, 그런 판사의 모습이 소극적이거나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다. 언론에 비춰진 모습, 그 사람의 평소 행실에 비추어 보면, 당연히 유죄이고 엄벌에 처해야 할 것 같은데, 고민하고 있는 판사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다.
형사재판을 하면서 많이 고민되었던 부분은 여론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였다. 언론으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는 유명인에 대한 재판이나 많은 국민들이 공분하고 있는 아동학대나 성범죄, 음주운전 사건을 진행하게 되었을 때에는 그와 같은 고민이 더욱 커지게 된다.
실제로 재판에 증거로 현출된 내용과 언론을 통해 외부에 알려진 내용이 다소 다른 경우도 많고, 법리적으로 유·무죄가 문제되거나 양형에서 고려될 만한 사정이 있는 경우도 있다. 또한 언론의 관심을 받지 않은 기존 다른 사건들과의 양형에서의 형평을 고민하기도 한다.
예전에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에세이 경연에 '여론과 재판'이라는 주제를 출제한 적이 있다. 평소 고민을 하던 주제라서 학생들의 생각은 어떤지 궁금해서였다. 한 학생이 쓴 에세이에는 국회를 통해 법을 제·개정할 수 있는 국민들 대부분이 공감하는 사항이라면 법률이 개정된 것처럼 법관도 기속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적었다. 정확히 맞는 얘기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대다수 국민들 사이에 공감대가 형성된 사항이라면 이를 존중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회적 이슈가 되는 사건을 일부러 담당하고 싶어 하는 판사는 많지 않고, 여론을 거스른 판결로 비판받고 싶어 하는 판사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여론에 따라서만 재판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여론을 어떻게 고려해야 하는가의 문제를 간단하게 정리하기는 어렵지만, 시간이 많이 지난 후에 자신이 쓴 판결을 다시 보았을 때에도 후회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고민하고 노력하는 것이 가장 중요할 것 같다. 판결문은 영구히 남는다.
권혁준 판사(서울중앙지방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