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알렉산더 네프스키 성당 외부
발칸 반도에서의 첫 번째 여정은 불가리아의 수도 소피아에서 시작했다. 소피아의 첫인상은 황량함과 쓸쓸함이었다. 흐린 날씨, 구 공산권 국가 시절이 그대로 느껴지는 낡은 전차, 회색 콘크리트 건물들, 피부로 느껴지는 작은 인구밀도, 작은 규모의 도시 중심부 등이 처음 눈에 들어온 것들이었다.
현재는 공원이 된 칼레메그단 요새
하지만 이곳엔 인상적인 비잔틴 양식의 교회 건축물들이 있었다. 거대하고 화려한 외관을 자랑하는 성 알렉산더 네프스키 대성당은 물론, 4세기에서 10세기 사이에 지어진 소박한 외관의 교회들까지도 그 내부는 화려했다. 내벽을 빈틈없이 채우고 있는 원색 톤의 프레스코화 및 제대 뒤에 설치된 화려한 중간 벽면은 신선함을 넘어 신비로운 느낌이었으며, 시종일관 그레고리안 성가와 비슷한 원시적 느낌을 주는 성가로 집전되는 미사는 아주 먼 과거로 여행을 온 듯한 느낌을 주었다.
구름이 걷히자 눈 덮인
비토샤산의 위용이 한 눈에
며칠간 흐렸던 하늘이 개자 눈 덮인 비토샤산(해발 2290m)의 아름다움이 도시 전체를 비추기 시작했다. 밝은 햇살과 맑은 공기, 그리고 아름다운 자연이 내 마음을 따뜻하고 편안하게 만들어 주었다.

날이 저물어 어둠이 내리면 노천 좌석의 불빛이 소피아의 중심가 비토샤 거리를 밝힌다. 소피아 법원 앞으로부터 시작되어 길게 이어지는 비토샤 거리의 카페와 레스토랑은 가족, 연인, 친구 단위의 손님들로 가득하다. 그들의 행복감이 혼자인 나에게도 전해졌다. 소피아에서의 마지막 저녁식사를 마치고 이튿날 새벽,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로 향했다.
거대하고 화려한 외관의
네프스키 대성당은 인상적
베오그라드 버스 터미널에서 멀지 않은 곳에 베오그라드의 중심가인 리퍼블릭 스퀘어와 크네즈 미하일로바 거리가 있다. 그리고 그 거리의 끝에는 칼레메그단 요새가 사바강과 도나우강이 합류하는 지점을 내려다보고 있다.
네프스키 성당 내부
크네즈 미하일로바 거리에는 오스트리아 양식의 건물들과 간간히 보이는 현대식 건물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각종 거리 공연이 펼쳐지고 노천 카페에서 시민들이 여유를 즐기고 있는 이 거리의 끝에 다다르니 현대식 쇼핑몰 1층에 스타벅스가 보인다. 베오그라드 최초의 스타벅스로 3년 전 정도에 입점했다고 한다. 1999년 NATO의 베오그라드 폭격 이후 스타벅스 입점까지 20년 정도가 걸린 셈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또다른 전쟁의 상처는 언제쯤 치유될 수 있을지. 베오그라드 체류 3일차인 3월 23일, 베오그라드 폭격 23주년이 되는 날에 잠시 이런 생각을 해봤다.
베오그라드라는 도시명은 하얀 도시라는 뜻을 갖고 있다. 현재는 공원으로 조성된 칼레메그단 요새의 내부가 과거에는 하얀 집들로 가득한 요새 도시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도나우강과 사바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위치한 이 요새의 역사는 2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로마, 비잔틴 제국을 거쳐 오스만 제국에 이르기까지 요새의 파괴와 재건이 반복되어 현재는 약간의 비잔틴 양식의 흔적이 잔존하는 오스만 시대의 성채가 그 위엄을 자랑하고 있다.
도나우 강의 석양
강변에 우뚝 솟은 언덕과 그 위의 성채를 중심으로 베오그라드의 사방에 평지가 넓게 펼쳐져 있다. 체류 기간 내내 날씨가 맑았던 관계로 칼레메그단 요새에서 도나우강 너머로 떨어지는 석양을 매일 감상할 수 있었다. 그 고요한 아름다움이 지고 나면 사바 강변쪽으로 펼쳐진 야경이 도시를 수놓는다. 강변을 따라 길게 늘어진 넓은 테라스의 고급 식당과 카페들, 강 건너편에 섬처럼 떠서 불을 밝히는 클럽들. 저 멀리 새롭게 조성된 워터프론트에는 멋진 고층 빌딩들이 솟아 있었다.
‘하얀도시’ 베오그라드
도나우 강변 야경 못 잊어
베오그라드의 마지막 석양을 감상하고 저녁식사를 위해 야경을 바라보며 걷다보니, 아직 이 도시의 아름다움을 다 겪어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떠나야하는 아쉬움을, 다음을 기약하며 달래야 했던 베오그라드의 마지막 밤이었다.
이준한 변호사 (서울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