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egalinsight
  • Legaledu
  • 법률신문 오피니언

    법조프리즘

    기로

    조웅규 변호사 (법무법인 바른) 입력 :
    글자크기 : 확대 최소
  • 인쇄
  • 메일보내기
  • 기사스크랩
  • 스크랩 보기
  • 178616.jpg

    이제 선택해야만 한다. 안내 방송에서는 시위로 인해 지하철 운행이 중단되었고 5분 후면 운행이 재개될 것이라 했다. 하지만 지하철은 25분째 멈춰있다. 지금 뛰어 나가서 택시를 타면 운이 좋으면 부산행 기차를 놓치지 않을 수 있다. 지하철에서 기다린다면, 늦어도 5분 내에 운행이 재개되어야만 기차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 오늘 미팅은 내가 반드시 참석해야만 진행될 수 있기 때문에 내가 불참하면 미팅 자체가 파투난다. 당장 택시를 타러 뛰어가야 하는가, 아니면 지하철이 움직이기를 기다려야 하는가.


    평소보다 일찍 출근 준비를 마쳤다. 기차역까지는 직접 운전해서 갈 예정이었다. 그런데 오늘따라 하늘은 더 푸르렀고 기분 좋게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했다. 주차장으로 가던 발걸음을 돌려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욕심을 내어 걸어가는 몇 분 동안 봄날을 조금 더 즐길 생각이었다. 충분한 시간 여유를 두고 집을 나섰고, 지하철은 약속시간을 지켜준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때까지만 해도 그 선택이 지금의 난처한 상황으로 이어질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삶은 우리를 끊임없이 기로(岐路)에 서게 한다. 배움이 쌓이고 삶에 적응하면서 많은 선택의 순간을 대비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미리 공부하고 준비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예상되었고, 보다 나은 결과를 내는 선택을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준비했다. 하지만 어떤 선택은 대비할 수 없는 상황에서 맞닥뜨려야만 했고, 어떤 선택은 오늘처럼 예상하지 못한 결과를 낳았다. 때로는 모피어스가 내민 빨간 알약과 파란 알약처럼 아무런 준비를 하지 못한 채 어떤 결론으로 이어질지 도대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선택의 순간도 있었다.

    변호사로 일하면서 맞이하게 된 선택의 폭과 그에 따른 책임은 더욱 무거웠다. 나를 위한 선택의 무게를 감당하는 것도 만만치 않은 상황에서 다른 누군가를 위해 선택하고 책임까지 짊어지는 것은 어찌 보면 무모하고 위험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의뢰인을 대리하여 상대방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기 직전의 선과 의뢰인의 이익을 최대화하는 선의 위태로운 접점에서 협상을 관철시키는 찰나의 순간, 의뢰인의 상황을 분석하여 어떤 방식의 소를 제기하고 어떤 내용으로 청구를 구성할지를 고민하여 치열한 공방 끝에 승소한 각급한 순간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 번 다른 사람을 대신하여 기로(岐路)에 서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그들을 위해 치열하게 고민했던 시간들이 오늘 내가 운이 좋게도 기차를 놓치지 않게 된 밑거름이 되지 않았을까.


    조웅규 변호사 (법무법인 바른)

    최근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