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여 년 전, 막 개발이 시작되던 서울 외곽 아파트 단지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하루가 다르게 새로 들어서는 아파트 단지와 원주민 마을이 혼재하던 곳이었다. 모처럼 그 동네를 들를 일이 있어서 기억을 더듬어가며 옛날의 등하굣길을 걸어봤다. 전반적인 도로나 지형은 비교적 그대로 남아 있어서 길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아파트 단지를 드나들 수 없게 굳건한 펜스가 쳐 있는 것이다. 그 시절에는 물론이고 얼마 전 이 일대가 재건축되기 전까지만 해도 여러 아파트 단지를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다. 아침 등굣길에는 단지를 하나씩 거치면서 조금씩 일행이 불어나서 10여명이 와글와글 교문을 들어섰고, 오후 하굣길에는 단지를 하나씩 거치면서 조금씩 일행이 줄어들어서 마지막엔 쓸쓸히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지금 화려하게 재건축된 아파트 단지들은 쇠창살로 담을 두르고 출입도 엄격하게 통제하고 있어서, 옛날의 등하굣길을 걸을 수 없고 빙 둘러가야 했다.
이곳만이 아니라 요즘 짓는 아파트들은 점점 배타적인 모습을 띤다. 마치 저개발국에 있는 외국인 전용 리조트들이 펜스를 두르고 경비를 세우는 것처럼, 주변과 격리된 그들만의 공간을 지향하는 것 같다. 영어로 gated community라고 하는 모습을 띄는 것이다. 안전을 위해서라고 하지만 역설적으로 범죄율이 줄어들수록 그리고 범죄율이 낮은 지역일수록 이런 경향이 더 강하게 나타나는 듯하다.
아파트만 그럴까. 사람들도 점점 비슷한 사람들끼리 배타적으로 어울리고 의견을 나눈다. 다양한 SNS들은 각자의 취향과 정치적 성향에 맞는 정보만 보여주고, 그가 좋아할 만한 기사와 동영상만 골라서 추천해준다. 비슷한 성향을 가진 사람들끼리 대화하고 정보를 나누다보니 각자의 성향은 점점 더 고착화된다. 결국 많은 사람들이 "내 주변에는 A를 지지(반대)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데 왜 저렇게 A 지지(반대)자가 많은 거야?"라고 의아해한다. 여기서 A는 '사람'일 수도, '법안'일 수도, '정책'일 수도 있다.
같은 성향의 집단구성원들끼리 토의를 하고 나면 기존의 성향이 더 극단화된다는 집단극단화(group polarization) 현상은 수많은 연구로 실증되었다. 법학자 선스타인이 그의 저서에서 소개한 실험이 그 예다. 참가자들에게 동성결혼, 기후변화 등에 대해 먼저 개인적인 입장을 익명으로 밝히게 한 후, 비슷한 정치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과 토론을 하게 했다. 토론은 예의바르고 진지하고 합리적이었지만, 그 결과 참가자들은 토론 전보다 더 극단적인 입장을 취하게 됐다. 찬성하던 사람들은 찬성의 정도가 더 강해졌고, 반대하던 사람들은 반대의 정도가 더 강해졌다. 중립의견은 없어졌다.
동질성은 당장은 편안함을 준다. 그러나 동질적인 집단끼리 폐쇄적으로 교류하는 것은 소통을 막고 극단화를 심화시켜 그 사회의 보이지 않는 위험을 더 키워가게 된다. 아파트 단지를 와글와글 가로지르던 수십 명의 꼬마들 중에는 성격도 다르고 맘에 들지 않는 애들도 있었지만 그래도 사이좋게 지내는 게 미덕이라고 배웠다. 그 소박한 미덕을 재음미해본다.
천경훈 교수 (서울대 로스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