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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초포럼

    민법주해 발간 소감

    천경훈 교수 (서울대 로스쿨)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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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2년에 초판이 나왔던 '민법주해'의 제2판이 양창수 전 대법관님을 편집대표로 하여 2022년 5월 드디어 발간되었다. 2015년에 작업이 시작된 지 7년 만이다. 일단 총칙편 네 권만 나왔고, 물권편과 채권편은 순차적으로 간행될 예정이라고 한다. 칼럼에서 특정 서적을 언급하는 것이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이 주해서는 특정인이나 특정 출판사의 전유물이 아니라 우리나라 법학계와 법조계의 공통자산이라고 생각되어 소감을 몇 자 적어본다.


    민법주해의 간행 취지는 초판의 편집대표이셨던 고 곽윤직 교수님의 머리말에 잘 담겨 있었다. "만일에 학설·판례를 망라적·객관적으로 서술하고 있어서 모든 연구자가 마음 놓고 신뢰할 수 있는 것이 하나 있다면, 각자 그것을 바탕으로 해서 독자의 이론이나 견해를 펴나가는 데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학계 공유의 자산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을 우리는 아직 가지고 있지 않다. 바로 그러한 구실을 할 수 있는 것 하나를 마련해 보겠다는 생각에서 이 '민법주해'의 간행을 꾀하게 된 것이다."

    머리말에서 '학계의 공유자산'이라고 하셨지만 '실무계의 공유자산'이기도 하였다. 쟁점을 다루는 분량이나 상세함이 기존의 교과서보다는 월등하고, 개별 논문보다는 훨씬 접근하기 쉬웠기 때문에, 이 책은 실무가들에게도 교과서와 개별 논문 사이의 적절한 참고자료가 되었다.

    나의 경우를 돌아보면, 교과서만으로도 벅차던 법대생 시절에는 주석서의 존재를 잘 알지도 못했던 것 같다. 대학원에 진학하고 사법연수생이 되면서 이 책을 들춰보는 경우가 늘었다. 기라성같은 필자들이 세세한 문제에까지 고민의 흔적을 남긴 것을 보면서 때로는 가려운 데를 긁어주는 것 같은 시원함을, 때로는 경외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다가 머리가 점점 굵어가면서는 군데군데 논의가 부족하거나 부정확한 곳이 눈에 띄기도 했고, 필자 별로 서술의 밀도가 다른 것 같다는 건방진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이 책이 적시에 업데이트 되지 않는 점이 안타깝기도 했다.

    초판 후 거의 30년이 다 되어서야 완성된 개정작업에 나도 영광스럽게 소임을 맡아 참여하였다. 민법의 법인편 중 기관, 해산, 벌칙 부분의 41개 조문에 대한 주해로서, 초판에서 고 최기원 교수님께서 집필하셨던 부분이다. 법인편은 상대적으로 중요성이 떨어지는 영역으로 알려져 있고 민법과 상법 양쪽에서 소외되어 있지만, 집필을 위해 자료를 모으고 연구해보니 의외로 분쟁도 많고 쟁점도 많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조문은 민법 제정 당시와 달라진 게 없을 정도로 소략하여, 해석론적 문제도 많고 법개정의 필요도 높음을 새삼 깨달았다.

    막막한 집필 과정에서 등불이 되어준 것은 선행 연구자들의 연구성과들이었다. '민법주해' 초판은 물론, 또 하나의 훌륭한 주석서인 '주석민법' 시리즈의 해당 부분을 쓰신 여러 선배 학자 및 실무가 분들의 연구 성과에 크게 의존하였다. 민법상 법인에 관한 여러 논문과 단행본들도 큰 도움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시대를 이어가는 법학의 릴레이에서 배턴을 떨어뜨리지 않고 다음 주자에게 넘겨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큰 보람일 것이다.


    천경훈 교수 (서울대 로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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