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법원장 제청, 국회 동의, 대통령 임명. 우리나라 대법관 임명절차는 세 박자에 맞추어 진행된다(헌법 제104조 2항). 그리고 대법원장 제청 이전에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가 3배수 이상의 대법관 후보를 추천을 하고, 대법원장은 이를 존중하도록 되어 있다(법원조직법 제41조의2).
이러한 임명 절차는 두 가지 특징을 지닌다. 첫째, 대법원장이 대법관에 대한 제청권을 가지는, 외국에서는 보기 어려운 이례적 제도라는 점이다. 사법부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특별히 존중한 헌법적 결단으로 설명될 수 있다. 둘째, 제청 단계에서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를 두었다는 점이다. 이는 사법의 독립에 치중하다보면 나타날 수 있는 폐쇄성이나 독단적 결정의 위험을 막는 견제장치이다. 사법부가 직접 대법관 인사를 공론화하고, 다양한 의견을 청취하며 검증하는 장을 마련하였다는 특징도 보여준다.
이처럼 대법관 임명절차가 대통령이 임명하는 여느 자리와는 다르게 설계되어 있는 이유는, 국가권력에 대한 견제의 역할을 하는 사법부의 최고심판관을 뽑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을 보좌하고 대통령의 영을 받는' 국무총리가 대통령에게 행사하는 제청권과 '사법부의 수장'인 대법원장이 행사하는 제청권은 용어만 같을 뿐, 그 차원이 전혀 다를 수밖에 없다. 행정각부의 하나인 법무부 산하 기구에서 대법관 후보를 검증하게 된다면, 3권분립을 위협하는 요소로 작용할 것이라는 우려는 자연스럽다. 정치의 사법화가 심해지고 있는 이 시대에, 사법의 독립성이나 중립성에 부정적 인식을 줄 수 있는 과정의 개입은 그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음은 물론이다.
한편으로, 대법원장의 제청권과 대통령의 임명권, 양자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지는 난해한 문제이다. 양자가 충돌하여 대법관 제청 자체가 상당히 늦어진 경우를 경험한 적이 있고, 양자가 너무 결합되어 대법관 임명이 지나치게 대통령(정권)의 뜻에 맞추어진다는 비판도 들어보았다. 기본적으로 헌법과 법원조직법의 규정과 취지에 따라, 대법원장의 제청권은 최대한 존중되어야 한다. 대통령은 후보자 추천 단계에서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의 당연직 위원인 법무부장관을 통하여 임명권자로서의 의견을 전달하면 된다. 이에 더하여 사법부의 의견을 존중하는 기조를 유지하면서, 관례적으로 형성되어 온 비공식적 협의를 적절히 활용하면 될 것이다.
대법관 임명절차에서 제청권의 비중이 큰 만큼, 최적임자를 대법관 후보로 정하면서 제청의 정당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적 보완도 고려해야 한다.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에 국민의 대표를 참여시키는 등 위원을 다양화·확대하는 방안이나 후보자 의견청취, 자료요청 등 실질적 논의구조를 갖추는 방안도 모색해볼 필요가 있다. 제청권이든 임명권이든 결국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이며, 국민의 지지 없이는 존재할 수 없음을 상기하면서.
홍기태 원장 (사법정책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