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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이언트 스텝

    이진웅 부장판사 (서울서부지법)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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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의선숲길 산책로가 법원 청사에서 멀지 않아 가끔 점심시간을 이용해 잠깐이나마 걷고 올 때가 있다. 벚꽃이 흐드러지던 꽃길은 요즘 녹음 짙은 산책로가 되었다. 산책은 운동으로도 좋지만 같이 걷는 사람들과의 대화도 소소한 즐거움이다. 기분이 내킬 때는 청사 8층 사무실까지 걸어 올라가기도 한다. 숨이 차고 힘들어 엘리베이터의 유혹이 심해질 때쯤 계단에 붙여져 있는 괴테의 명언 문구가 보인다. “서둘지도 말고 쉬지도 말라.” 잠시 망설이다 의지를 다잡고 다시 계단을 오른다. 한 걸음 한 걸음.

    미국 금리 인상의 보폭이 급격히 커졌다. 자이언트 스텝.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지난 주 연방기준금리를 한 번에 0.75%포인트 올린 것이다. 가파른 금리인상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한 미국 중앙은행의 고육지책이다. 한국은행 역시 한 번에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인상하는 빅스텝까지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갑작스런 경제 환경의 변화가 초래할지 모르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운 심리는 과거의 기억을 소환한다. 과거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는 법원의 사건에도 영향을 미쳤고 기업과 개인의 도산사건, 배드뱅크의 양수금사건, 대출금을 갚지 못한 사업주의 형사사건 기록 속에 흔적을 남겨 놓았다. 앞으로도 상당 기간 계속될 것으로 전망되는 세계적인 금리 인상 역시 어떠한 형태로든 그 흔적을 남길 것이다. 모두가 보폭을 넓힌 거인의 발걸음이 우리 사회에 줄 고통을 우려하고 있다.

    거인 티탄족은 그리스로마 신화 속 대지의 여신 가이아가 낳은 열두 명의 자식이다. 제우스는 티탄족을 지하세계에 가두고 또 다른 거신족인 기가스마저 물리쳤다. 타이탄(titan)은 티탄에, 자이언트(giant)는 기가스에 어원을 두고 있다. 다윗에게 당한 골리앗처럼 덩치만 큰 거인도 있지만 이러한 거인만 있는 건 아니다. 타이탄은 한 분야에 매우 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뛰어난 사람을 지칭하는 뜻을 갖고 있다. 자이언트 또한 비슷하다.

    자이언트가 들어 간 문구 중에 ‘Standing on the shoulders of giants’를 좋아한다. ‘거인의 어깨 위에 서서’라는 뜻인데 그 어깨 위에는 난장이가 서있다. 12세기 이미 있었던 개념을 1675년 뉴턴이 "내가 더 멀리 볼 수 있었다면 이는 거인의 어깨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라는 말을 해서 더 유명해졌다. 과거 뛰어난 사람들이 쌓아 놓은 지적 성과물 덕분에 더 발전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소설가 움베르토 에코의 책 제목으로도 쓰인 이 문구는 과학, 인문학뿐만 아니라 법률 분야에도 타당하다. 켜켜이 축적된 판례와 학설, 이론은 거인의 어깨와 다를 바 없다. 어려운 사건도 거인의 어깨 위에서 보면 해결의 방향이 보일 때가 많다. 존경심이 절로 든다. 다만, 유의할 점은 때에 따라 판례 변경도 시도하는 트랜스포머 같은 거인이기 때문에 어깨 위에 서 있을 때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는 것이다. 또 하나 거인이 어깨를 쉽게 허락하지 않으니 그 어깨에 오르기 위해 사다리를 열심히 올라가야 한다. 서둘지도 말고 쉬지도 말고 한 걸음 한 걸음. 꼭 자이언트 스텝일 필요는 없다.


    이진웅 부장판사 (서울서부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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