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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신논단

    한국 사회는 판사의 재량권을 수용할 수 있는가?

    전원열 교수 (서울대 로스쿨)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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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이른바 스테이블 코인이라고 주장하던 가상화폐 테라와 루나가 대폭락했다. 많은 투자자들이 공황에 빠졌고, 테라·루나 창설자를 상대로 집단소송을 제기한다고 한다. 그런데 법률가들만 알고 시민들은 대체로 모르지만, 한국에서 집단소송이라고 불리는 것은 미국의 집단소송과 전혀 다르고 단순히 원고가 여럿인 소송일 뿐이다. 그래서 대형 금융사기 사건이나 개인정보 유출사건, 가습기 살균제 사건 등 다수피해자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여러 법률가와 언론은 한국에 미국식 집단소송제(class action)를 도입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미국의 집단소송제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판사의 엄청난 재량이 요구된다는 점, 미국의 집단소송은 한국 사회가 기존에 이해하고 있던 민사소송과 전혀 다른 차원의 소송이라는 점은 논의되지 않는다. 


    실제 미국 소송사건을 빗댄 사례를 생각해 보자. 유전자변형 콩을 사용하지 않은 “100% 천연”이라고 광고하여 식용유를 각종 유통경로를 통해 10만 병 판매한 후에, 유전자변형 콩으로 만든 식용유임이 드러났다. 여러 유통경로의 전산자료를 취합했더니, 구체적으로 확인가능한 매수내역은 2만 명이 3만 병을 매입한 것뿐이다. 집단소송이 제기되었다. 집단소송제 상으로 법원이 일단 판결을 내려 확정되면 위 식용유 소비자 누구도 다시는 소를 제기하지 못하는데, 법원은 원고의 범위를 어떻게 파악해야 하는가? 10만 병을 구매했을 가상의 숫자를 어떻게 정하는가? 그냥 2만 명으로 한정하는가, 아니면 7~8만명의 임의의 숫자로 뚝 자르는가? 이들에게는 어떻게 통지를 하는가? 가령 법원이 병당 10만 원의 배상을 결정했다 하자. 법원은 피고회사에게 100억 원(=10만원x10만병)의 배상을 명해야 하는가, 아니면 30억 원(=10만원x3만병)의 배상만 명하면 되는가, 아니면 그 중간의 어떤 금액인가? 판결선고 후에 그 배상금 분배는 어떻게 하는가? 미국에서 흔히 그러하듯 원고대리인인 변호사가 분배를 담당한다고 하자. 판매 전산기록에는 없는 사람이 위 식용유병을 들고 오면 당연히 배상을 하는가? 어떤 사람이 빈 병을 100개 모아 오면 그에게 1천만원을 지급해야 하는가? 판결 후에 예상 외로 돈 달라는 사람이 적어서 판결금액이 남으면 어떻게 처리하는가?


    미국에서 디스커버리 작동은

    소송절차에서 판사의 큰 재량

    그런 재량 수용할 만큼 한국은

    법관의 권위에 복종하는가

     
    미국의 집단소송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이는 판사 및 판사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관련자들의 엄청난 재량 하에서 작동하는 제도임을 알 수 있다. 대륙법계 국가들은 미국식 집단소송제를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한다. 현재 한국에서 뜨거운 주제 중의 하나인 미국식 증거수집절차, 즉 디스커버리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현재 한국 소송법상 문서제출명령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데 반해서 미국에서 디스커버리는 작동한다는 차이의 근본에는, 판사가 소송절차상 가지는 큰 재량이 있다. 미국의 판사는 자료의 존재 인정에서 한국만큼 엄격하고 구체적인 증명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리고 법원 명령에도 불구하고 증거가 제출되지 않으면, 절차지연에 따른 변호사비용 등 각종 비용의 변상을 당사자에게는 물론 그 대리인인 변호사에게 명할 뿐만 아니라, 원고의 불제출만으로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기도 하고 피고의 불제출만으로 원고를 승소시키기도 한다. 때로는 명령불이행을 법정모욕으로 취급하여 당사자나 소송대리인을 구금하기도 한다.

     
    조자룡 헌 칼 휘두르듯 소송절차와 판결의 내용, 그리고 판결후 집행과정에서 거친 권한을 행사하는 법관을 한국 사회는 받아들일 수 있는가? 법관의 그런 재량을 수용할 만큼 한국 사회는 법관을 존중하고 법관의 권위에 복종하는가? 지난 10여 년간 법관의 권위는 상승이 아니라 하락한 것은 아닌가?

     

     

    전원열 교수 (서울대 로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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