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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별, 그 예민함에 대하여

    정인경 선임헌법연구관(헌법재판소)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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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라델피아’(1993)는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에 맞선 영화로 유명하다. 이 영화에서 놓치기 쉬운 감동적인 장면이 있다. 유능한 변호사였으나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은밀하게 해고당한 주인공 앤드류는 자신의 소송을 맡아주기로 한 흑인 변호사 조를 어느 날 게이 파티에 초대한다. 파티가 끝나고 소송 준비를 위해 마주 앉은 자리에서 앤드류는 그만, 조의 눈빛에서 그조차도 자신을 온전히 인정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상처받은 앤드류는 오페라 '라 맘마 모르타(La Mamma Morta, 어머니는 돌아가시고)'를 조와 함께 들으며, 주류에서 외면당하고 은밀하게 배제당하는 외로움과 슬픔에 대해 노래한다. "슬픔 중에 사랑이 내게 왔다. 주변이 피와 흙뿐인가. 그래도 살아라. 나는 생명이요. 신이요. 사랑이요."

    인정받지 못하는 개인이 받는 심리적 타격은 이토록 예민한 것이다. 영화에서 변호사 조는 이 재판의 본질은 ‘성적기호’가 아니라 ‘공평함’이라고 말한다. 부당한 대우는 우리를 둘러싼 복잡한 사회관계 속에서 다차원적으로 수시로 발생한다. 법과 제도뿐만 아니라, 지배적 문화와 위계질서 속에서, 정보의 비대칭 속에서, 조직 내에서 의사결정권한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서, 수도 없이 발생하지만, 바쁘고 분화된 현대인의 삶 속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은 당사자나 집단이 직접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문제로 인식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 점을 간파한 독일 철학자 악셀 호네트는 사회관계 속에서 불인정, 무시라는 개인의 심리적 경험을 통해, 지배적 문화나 질서, 가치의 협소함으로 인한 각종 사회 병리현상을 가장 잘 파악할 수 있다고 본다. 사회에서 다양한 형태로 부당하게 배제되고 외면당하는 개인 내지 집단이 직관적으로 경험하는 불의야말로, 이들의 심리적 상처야말로, 한 사회 내 부정의와 불평등의 국면을 가장 잘 파악할 수 있는 기제, 신호라고 본 것이다.

    헌법재판소의 많은 사건에서 인간의 존엄과 가치, 평등권 침해가 다투어진다. 당사자가 아니면 누구도 그로 인한 불의를 경험하기 어려운 세밀한 영역에서‘부당함’의 신호를 보낼 수 있는 절차가 우리 사회에서는 헌법소원을 통해 어느 정도 보장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신호에 대한 해결이 헌법재판의 영역인지 민주주의의 영역인지는 언제나 어려운 숙제이지만, 오늘도 누군가 다양한 삶의 국면에서 예민하게 발생하는 부당함의 신호를 꾸준히 보내온다. "법의 어떤 점을 사랑합니까?"라는 조의 질문에 앤드류가 대답한다. "자주는 아니지만…가끔은…정의의 실현에 동참할 수 있으니까요. 그때 저는 전율을 느낍니다."


    정인경 선임헌법연구관(헌법재판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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