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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석천의 시놉티콘

    [권석천의 시놉티콘] ‘백래시(backlash)’는 어떻게 완성되는가

    권석천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전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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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반세기 동안 로 대 웨이드 판결(1973)은 여성들의 자유와 평등을 지켜왔다 … 정부는 여성의 몸이나 삶의 경로를 지배할 수 없었다. 여성의 미래를 결정할 수 없었다….”

     
    스티븐 브라이어, 소니아 소토마요르, 엘리나 케이건. 미 연방대법원의 ‘낙태 합법화 폐기’ 판결문에서 대법관 세 명의 반대의견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49년 만에 뒤집힌 판결을 무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는 절망과 분노가 현재완료형에 이어지는 과거형 시제에 묻어납니다.


    “우린 로 판결 이전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더 나쁜 곳으로 가게 될 것이다.” 미국 잡지 뉴요커는 단언합니다. “과거엔 단지 안전하지 않은 낙태의 시대였다면 이제는 모든 낙태가 범죄로 수사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미국 50개 주 가운데 26개 주가 대법원 판결과 동시에 낙태 규제를 시행하거나 시행 채비에 들어갔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임기 중 대법관 3명을 임명한 것이 대법원 판결의 승부를 가른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대법관 몇 명 바뀌었다고 바로 세상이 바뀌진 않습니다. 지금 ‘낙태 금지’ 돌풍의 중심엔 미국 사회 곳곳에 넘실대는 보수주의 법률가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각 주에서 낙태를 응징할 만반의 시스템을 구축해놓고 있었던 것입니다. 텍사스 주의 경우 성폭행 임신까지 포함해 ‘임신 6주’가 지난 낙태 시술자/조력자에 대해 일반인이 손해배상 소송을 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주 정부를 상대로 위헌 소송을 내지 못하게 고안된 장치입니다.

     

    49년만에 무너진 美 ‘낙태 합법화’
    집요한 보수법학 운동에 밀린 것
    퇴행 막으려면 가치에 철저해져야


    그들의 모태는 ‘페더럴리스트 소사이어티’입니다. 1980년 레이건 대통령 당선 직후 예일대 로스쿨에 태동한 소모임이었습니다. 2년 뒤 전국 단위의 회의체가 출범하고, 10여개 로스쿨에 지회를 설립합니다. 이 보수주의 법학 단체는 로 대 웨이드 판결을 타깃으로 낙태 규제와 대법관 선별의 이론적 토대를 만들어갑니다. 그 기류를 대표하던 인물이 새뮤얼 얼리토입니다.(제프리 투빈, '더 나인')


    얼리토는 1985년 법무부에서 로 대 웨이드 판결에 대한 전면적 공격을 주장한 데 이어 1991년엔 연방항소법원에서 펜실베이니아 주의 낙태 규제 전체를 옹호하는 의견을 발표합니다. 2006년 대법관에 임명된 그는 마침내, 이번 판결의 다수의견을 집필하기에 이릅니다. 오늘의 미국은 일군의 법률가들이 로 대 웨이드 판결을 40여년간 끈질기게 두들겼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그만큼 막을 기회도 많았다는 뜻인데, 반대 진영은 과연 얼마나 노력했는지 궁금합니다.

     
    로마가 하루 아침에 세워지지 않듯 백래시(backlash·변화에 대한 반발)도 하루 아침에 완성되지 않습니다. ‘설마 우리 사회가 그렇게까지 뒷걸음질 치겠어?’ 과신은 집요함 앞에 허무하게 무너집니다. ‘나 한 사람 가만히 있다고 달라질 게 있겠어?’ 나태함은 퇴행을 방조하고 고무합니다. 그리하여, ‘이상’이라는 이름의 전차는 ‘태만’과 '환멸'이란 정거장을 거쳐 ‘퇴행’이라는 종착역에 다다릅니다.

     
    “내가 이 따위 문제(this shit)로 시위를 하다니!” 연방대법원 앞 반대집회 피켓에 이런 문구가 등장했습니다. 진정 소중한 가치라면 그 가치를 지키는 데 철저해야 합니다. 내가 있는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해나가야 합니다. 그러지 않다면 언젠가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됩니다. “내가 이 따위 문제로…”라고 탄식하면서.

     

     

    권석천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전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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