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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法臺에서

    달갑지 않은 재회

    차기현 판사 (광주고등법원)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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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n't go away. 난 아직 이곳에. 시린 마음 그 안에.”


    드라마 ‘경이로운 소문’의 OST ‘재회(再會)’의 한 소절이다. 극중 타인의 몸에 손을 가져다 대면 그 사람의 과거와 기억을 읽을 수 있는 능력(판사로서 부럽기 그지없는 능력!)을 가진 ‘카운터’ 도하나를 연기한 배우 김세정(글로벌 인기 케이팝 그룹 아이오아이와 구구단을 거친 싱어송라이터이기도 하다)이 불렀다. 노랫말이 주는 미묘한 느낌(경계에 선 존재의 감성?)을 잘 살린 것 같아 여러 번 반복해 듣는다.

     
    재회라고 하면 보통 이렇게 애틋하고 가슴 찡한 느낌을 준다. 각자 마음에 담아둔 누군가를 생각하며 잠깐 설레기도 할 것이다. 그렇지만 법정에서 같은 이를 여러 번 당사자로 재회하는 건 결코 달갑지 않다. 설레거나 반갑기보다 ‘왜 또 오셨을까’ 싶다.

     
    법원 주변을 떠나지 못하는 사연들은 참 많다. 오래전 재판연구원으로 일할 때 간접적으로 인연을 맺어, 판사가 된 뒤에 다시 형사사건의 당사자로 재회한 A씨의 경우가 생각난다. 그는 낡은 건물 지하를 빌려 오랫동안 장사를 했다. 위층 오수관이 부실해진 탓에 A씨의 영업장 천정으로 오물이 스며들었다. 손해배상 소송에서 승소했지만 기대한 만큼 손해액 인정을 받지 못해 그랬는지 그는 소송을 또 하고, 또 하고 그랬다.

     

    그 와중에 건물주는 오수관을 고치지 않아 누수는 계속됐다. 웬만한 사람이면 지긋지긋해서 나와버렸을 것 같은데, A씨는 그러지 않았다. 영업장에 대한 애착이 매우 강한 것 같았다. 거듭된 소송에서는 늘 전 사건에서 배상을 명한 부분을 제외한 추가 피해로만 한정해 주문이 나갔다. 그래서 거기 적힌 숫자는 A씨의 기대에 못 미친 것 같다. A씨는 법원을 원망하다 급기야 대중교통에 불을 질러 형사사건의 피고인이 되고 말았다.

     
    이 사건으로 수감생활을 마친 뒤, A씨는 다시 문제의 그 낡은 건물을 찾아갔다. 애지중지하던 영업장 시설물은 모두 철거된 뒤였다. 그는 해당 건물에 불을 지르려 했다는 혐의로 다시 형사 사건의 피고인이 되어 나와 재회했다. 지난한 과거를 잘 알고 있기에 최대한 그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며 양형의견을 냈다. 판결서에도 다시는 A씨와 재회하고 싶지 않은 심정을 담아내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지만 선고를 받고 나가는 A씨의 표정은 어쩐지….

     

    법과 양심에 따라 심판해야 하기에 피고인이 짠하다고 무조건 봐줄 수 없다. 대립당사자 구조에서 양쪽을 모두 만족시킨다는 것도 쉽지 않다. 그렇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법원 주변을 맴도는 ‘시린 마음’들을 어떤 식으로든 조금이나마 위로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좋겠다. 더는 재회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 있기만 하다면, 그걸 알고 싶은 맘 간절하다.


    “Can go away. 기나긴 길 끝에. 부디 두 눈 꼭 감을 수 있길.”


     

    차기현 판사 (광주고등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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