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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종의 회고록] 밤나무 검사의 자화상 (7-1)

    2부 가필(加筆) ⑦ 이 글을 남겨도 될 것인가?

    박솔잎 기자 soliping@lawtimes.co.kr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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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직자의 세 가지 허물은, 조급(躁)·감춤(隱)·눈치 없음(?)


    법무부 법무실 법무과장 - 
    (1981. 4. 13. ~ 1982. 8. 15.)



    이 글을 쓰기 전에 떠오르는 건 ‘자허원군성유심문’의 두 마디다. 남의 잘못은 보지도 말고 말하지도 말라[戒眼莫看他非 戒口莫談他短]. 그러나 나는 글을 쓴다.


    법무과장으로 발령받을 당시 법무과는 ‘법무행정의 종합기획’이란 기본적인 임무 외에 법령안의 기초·심사, 법령의 유권해석, 변호사와 공증인에 관련된 사무 일체를 관장하면서 다른 실·국 업무에 속하지 않는 모든 사무를 처리하는 법무부의 주무과였다. 검찰 제3과 검사 근무 시절 법무과 업무를 어깨 너머 봤기에 대략 짐작은 했으나 막상 그 직책을 맡고 보니 이 자리가 보통 어려운 게 아니었다.

    부임 즉시 장관실에서 받은 지시 내용이 아주 특별했다. 소속 검사 1명의 이름을 콕 집어 통상업무를 맡기지 말고, 그가 처리하는 모든 업무에 대해서도 일절 관여하지 말라는 지시였다. 그 검사는 장관의 개인적인 법률비서관 역할 수행을 위해 법무부 법무과 소속 검사로 발령을 받은 것이었다. 5명 정원으로도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 써야 할 만큼 일이 많았는데 실제 인력은 4명에 불과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장관이 부임 직전에 발간한 전문법률서적 발간에 그 검사가 크게 기여했다. 과연 그럴 만한 능력이 있는 훌륭한 검사였다. 장관 지시에 따라 특명 사무만을 처리해야 했기에 그는 며칠 밤을 꼬박 지새우는 것이 거의 일상이 됐다. 그러다 과로로 사무실에서 졸도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가 처리하는 일에 관여하지 않았더라도 법률상 엄연한 내 부하이기에 상부 보고 없이 직접 그를 서울대병원으로 이송해 응급조치를 취한 후 입원시켰다.

    얼마 지나 이 사실을 알게 된 장관이 나를 호출해 사정을 말했더니 사전에 보고도 없이 마음대로 입원시켰다고 질책했다. 발끈한 나는 정색을 하고 반박했다. 그는 내 직속 부하인데다, 사람 생사가 걸린 일이 왜 장관의 결재사항이냐 라는 취지였다. 그도 별말은 없었지만 매우 불쾌한 표정이 역력했다. 그런 그를 뒤로하고 장관실을 나왔다.

    이즈음 장관과 간부 전원이 참석하는 법무부 내 공식 행사장에서 또 다른 검사가 졸도하는 일이 발생했다. 어느 실·국 할 것 없이 법무부의 직원 모두가 엄청난 과로와 스트레스 속에 일해 온 결과였다. 장관의 직무수행 방법이 무척 독특했다. 보통 낮에는 자리를 비운 채, 아침 출근 직후와 퇴근 때 보고를 받는데 퇴근 무렵 수정사항을 지적해 다음 날 아침 출근 때까지 완성해 올 것을 지시했다. 대부분 밤늦게 야근하거나, 때로는 밤을 새우며 일해야 하는 경우가 잦았다. 사정이 이러니 퇴근 무렵 장관실을 다녀오는 과장의 입에서 무슨 지시가 있을지 매일 전전긍긍했다. 장관 지시가 항상 옳고 명확한 건 아니라 때로는 검사들에게 지시하지 않은 채 다음날 적당히 보고해 끝내기도 했다.

    역대 법무과장 중에는 과로로 요절한 분이 있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로 업무수행이 힘들었는데, 이는 내가 법무과장으로 발탁된 연유와도 이어진다. 어느 공식 석상에서 장관께서 나에 대해 “송 과장이 철봉과 평행봉에서 운동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데, 실력이 상당했고 이에 비춰 법무과장을 시켜도 큰 병 없이 직무를 수행하겠다 생각해 발탁했다”고 하는 게 아닌가.

     

    하루 두 차례만 보고 받는 장관
    퇴근 무렵 수정사항 지적한 후
    “다음날 출근 때까지 완성” 지시
    거의 야근 또는 밤새우기 일쑤
    “과로로 검사가 요절” 소문도


    장관 부임 뒤 실·국 장 회의서
    생활 기본법의 불합리한 조문
    1년 내 모두 개정 준비 지시에
    그 자리에서 “안 되는 일” 지적
    회의 뒤 ‘즉석면박’ 정중히 사과


    이분의 장관 취임 후 포부와 젊은 검사의 기개를 엿볼 수 있는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그가 장관으로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장관이 주재하는 실·국장회의에 법무과장만 배석했는데, 각 실·국 및 기획관리실장 다음 법무실장의 보고를 받은 장관이 이런 지시를 내렸다. “세상이 급변하고 있는데, 법률은 이를 뒤따르지 못하고 있다. 국민 생활의 기본법인 민법, 형법, 상법, 민사소송법, 형사소송법 등 기본법의 개정 계획을 수립해 적어도 1년 안에 불합리한 조문을 모두 개정할 수 있도록 하라.”

    이 말을 들은 법무실장이 무슨 대답을 할 수 있었겠는가? 장관의 시선이 나에게 꽂혔다. 그가 내게 명시적으로 의견요청을 한 바 없음에도 나는 수십 년 논쟁을 거듭하면서도 1개의 조문도 고치지 못하고 있는 일본 개정형법가안 사례를 들며 그건 안 되는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 이 말을 들은 장관은 곧장 회의를 끝냈고, 참석자들 모두 벌레 씹은 얼굴이 돼 장관실을 나갔다. 두어 시간 후 장관 호출로 장관실에 가니, 지시를 따를 수 없는 구체적 이유를 설명하라했다. 이미 예상했던 터라 마음속에 담아뒀던 내용을 조목조목 설명했다.


    잠시 생각하던 그가 한 말의 취지는 다음과 같다.

    “사정이 그렇다면 내가 설령 부당한 지시를 했다 하더라도 즉석에서 그것은 안 된다고 하면서 면박을 줄 일이 아니라, 그때는 모른 체하고 듣고 난 다음 적당한 기회에 나에게 이런 구체적인 내용을 설명해 주면 내가 차관, 실·국장들 앞에서 면박당하는 일이 없지 않겠는가?”

    듣고 보니 과연 옳은 말이었다. 나는 즉시 나의 경솔한 언동에 대해 장관께 정중히 사과했다.

    언젠가 내가 『논어(論語)』의 「계씨(季氏)」 편을 읽다가 삼건(三愆)의 장(章)에서 눈이 멎었다. 위의 장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군자를 모심에 세 가지 잘못이 있다. 말씀이 아직 이르지 않았는데 말하는 것을 조급함이라 한다. 말씀이 이르렀는데 말하지 않는 것을 감춤이라 한다. 안색을 살피지 않고 말하는 것을 눈이 멀었다고 한다[孔子曰: 侍於君子有三愆, 言未及之而言, 謂之躁, 言及之而不言, 謂之隱, 未見顔色而言 謂之?].”

    안 해야 할 말을 하고, 해야 할 말은 안 하며, 눈치 없이 아무 때나 말하는 것이 아랫사람의 세 가지 허물이란 뜻이다. 물론 이 때에 윗사람이 덕이 아닌 위세로 아랫사람의 입을 막아 꾸짖는 것은 그의 잘못일 것이다.

    내가 저지른 위와 같은 일을 공자의 말씀에 비추어 본다면 어떤 평가를 받을 것인가?

    기본법의 개정 문제는 이렇게 끝났고, 그의 재임 기간 중 어느 기본법의 어느 한 개 조문도 개정되지 못했다. 그러나 그 기간 중 제·개정된 2개 법률이 역사적으로 큰 의미가 있어 이를 기록으로 남긴다.

    제정된 법률은 교통사고처리특례법이다. 1981년 제정·공포된 법률로 내무부와 법무부 공동 제안으로 제정됐으나, 모든 내용과 조문은 법무부에서 성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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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7년 현대자동차 미국수출 <제공=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

    입법취지는 1980년대 자동차 운전이 보편화된 현실에 부응해 교통사고로 인한 피해의 신속한 회복을 촉진하고 국민 생활의 편익을 증진하려는 것이었다. 


    법무과장을 지내던 마지막 해에 이 법이 제정됐는데, 상공부 측의 협조 요청이 시발점이 돼법률로 제정됐다. 그해 어느 날 상공부 기계공업국장인 대학동기가 나를 찾아왔다. 뒷날 두 번씩이나 상공부 장관을 역임한 사람이었다.

    그는 내게 정부의 중화학공업육성 정책에 따라 기계공업을 육성·발전시키는 데 있어 자동차 공업이 핵심인데, 사고 발생 시 운전자에 대한 처벌이 과하여 적절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취지로 말했다. 즉, 오너 드라이브 시대가 돼야 자동차공업이 육성·발전될 수 있는데 사고가 나면 운전자가 형사처벌을 두려워하므로 자가운전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경미한 사고를 낸 운전자에게 피해자와 합의했거나 그 자동차가 보험 또는 공제조합에 가입돼 있다면 처벌을 면제해주는 내용의 법안을 마련해 달라는 취지였다.

    2년 전부터 자가운전자였던 나는 그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했고, 그 내용을 윗선에 보고하고 내무부와 재무부 등 관계 부처와의 협의를 지시했다. 이 법의 실효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피해자 합의와 같은 평가를 받을 만한 보험제도를 확립하는 것이 급선무였기 때문이다.

    한편 몇 개의 예외 사유를 제외한 경미한 교통사고는 모두 공소권 없음으로 불기소 처분해야 하니, 일선 검·경의 의견 조회는 필수였다. 의견수렴을 마치고 보니 검사의 공소권을 제한하는 법 내용에 대한 검사들의 반대 의견이 거셌다. 사람이 사망한 사례를 예외로 하더라도 큰 상해를 입은 중상자가 발생된 교통사고까지 이 법의 면책조항에 걸려 공소를 제기할 수 없어 그 당시의 법 감정으로는 쉽게 용인될 수 없었다. 돈으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다는 인명 경시 풍조가 만연할 가능성도 있었다.

    고심 끝에, 반드시 처벌할 8가지 유형의 운전자 과실을 규정했다. 당시 참고할만한 외국 법제가 없어, 내가 직접 머리를 싸매고 궁리하며 예외 사유를 가려내 법조문에 명시했다. 몇 달간 끈질긴 노력으로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특례법이 탄생했다.

     

    이 법으로 더 많은 교통사고 피해자가 생기고, 인명 경시 풍조가 확산됐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자가 운전이 늘어나며 자동차공업이 육성·발전됨으로써 오늘날 우리나라가 자동차 제조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음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이 법 시행 전 재무당국에서 마련한 보험 내실화를 위한 여러 제도적 장치가 오늘날 자동차 보험제도의 근간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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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광현 전 법무실장 / 유명건 검사

    나의 재임 기간 중 나의 손으로 성안된 이 법률은 그런 뜻깊은 의미를 가진 법률이라고 생각한다. 이 법의 제정에 매달려 몇 달간이나 고생하였던 유명건(柳明建) 검사의 노고를 치하하는 바이다.

    <정리=박솔잎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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