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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산 안창호 선생을 존경하는 이유

    오세용 교수(사법연수원)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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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소에 “존경하는 인물이 누구인가요?”라는 질문을 종종 듣는다. 예전에는 한참 생각하여야 했는데 이제는 ‘도산 안창호 선생’이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도산 선생에 대하여 본격적인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미국 샌프란시스코를 방문하였을 때였다. 샌프란시스코에는 ‘페리 빌딩’이라는 명소가 있다. 알고 보니 이곳은 1908년 전명운, 장인환 의사가 친일 외교관이었던 스티븐스를 저격한 장소였다. 이때 미국에서 두 의사의 구명운동과 변호인 선임 등을 주도한 분이 바로 도산 선생이었다. 도산 선생은 국내 및 상해 임시정부에서 활약한 독립운동가로 알고 있었는데, 대체 그는 왜 당시 미국에 머물렀는지 궁금해졌다.

    원래 도산 선생은 공부를 하러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런데 미국에서 거주하는 한인 동포들이 불결하게 생활하고 시끄럽게 떠드는 등으로 미국인들에 불쾌감을 주고 이들로부터 멸시받는 것을 목격하고는 공부를 잠시 미루고 교민 사회를 변화시키는 노력을 시작하였다. 먼저 도산 선생은 몸소 한집 한집 청소 운동을 시작하고 집집마다 화분을 놓는 등 청결한 환경을 조성하였고, 한인들에게 의복을 깨끗하게 갖추고 음주 고성방가를 삼가도록 하였다.


    처음에는 반발하던 한인들도 솔선수범하는 도산 선생을 신뢰하기 시작하여 ‘문명인으로서 서로 이웃을 배려하여야 하고, 여기 한인 한 명의 불쾌한 행동으로 모든 미국인이 우리 민족 전체를 불쾌하게 여길 수 있다’라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몇 달 만에 한인 사회가 크게 달라지자, 미국인들의 시선도 우호적으로 바뀌었고 심지어는 “당신네 나라에서 위대한 지도자가 왔느냐?”는 질문을 하기도 하였다. 나아가서는 미국에 입국하는 한인이 여권을 가지고 있지 않거나 법정 휴대금이 없는 경우에라도 도산 선생이 이끄는 ‘대한인국민회’에서 이민국에 보증을 하면 통과되기도 하였다. 당시에 나라를 잃은 우리 민족으로서 미국으로 들어가려면 여권이나 비자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였을까 궁금했는데, 그 의문은 이 이야기를 듣고 바로 풀렸다.


    특히, 도산 선생이 금지나 강압에 의하지 않고 많은 사람에게 자발적인 마음의 변화를 이끌어 낸 점에 주목하고 싶다. 지금 우리 사회에도 이런 훌륭한 분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해 본다. 그런데 도산 선생은 이럴 줄 알았다면서 생전에 아래와 같은 글을 남기셨다.


    “우리 중에 인물이 없는 것은 인물이 되려고 마음먹고 힘쓰는 사람이 없는 까닭이다. 인물이 없다고 한탄하는 그 사람 자신이 왜 인물 될 공부를 아니하는가. 그대는 나라를 사랑하는가. 그러면 먼저 그대가 건전한 인격이 돼라.”



    오세용 교수(사법연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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