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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의 신(新)과 함께

    [법의 新과 함께] 나의 소중한 미지근한 휴가

    김정현 변호사 (법무법인 창경)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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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원 휴정기를 틈타 다녀온 여름 휴가지에서 작은 소동이 있었다. 뜨거운 햇살 아래 아이들과 바나나 따기 체험을 해보겠다며 농장을 방문한 것이 그 시작이었다. 클라이언트의 전화가 계속 오자 내 품을 계속 노리고 있는 아이들을 피해 뜨끈하고 축축한 비닐하우스에 숨어들어가 한참 동안 업무 연락을 했다. 얼마나 오래 통화했을까, 순간 귀가 너무 뜨겁다는 느낌이 들어 스마트폰을 얼굴에서 떼어 보니 스마트폰의 화면이 비정상적인 초록빛 줄무늬를 발사하고 있었다. 화면을 툭툭 치자 갑자기 ‘온도가 너무 높아 카메라 기능을 이용할 수 없다’는 경고문이 뜬다.

     
    난생처음 보는 휴대폰 기능이었다. 문득 핸드폰이 폭발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급히 전원을 끄고 덥고 습한 비닐하우스를 나와 허둥지둥 차가운 물병을 찾았다. 바다까지 와서 계속 일하더니 결국 큰일 낼 뻔했다며 가족들의 안도 섞인 구박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토록 꿈꾸어 왔던 휴가인데
    업무와 단절되자 조급증 일어
    자꾸만 핸드폰을 켰다 껐다…
    그래도 기다린 휴가는 소중해


    평일, 주말, 휴가를 가리지 않고 언제나 대기 상태이던 핸드폰이 완전히 꺼진 것은 정말 오랜만의 일이었다. 10여 년간 변호사 생활을 하며 달라지지 않는 게 있다면 휴가지에서도 계속 클라이언트로부터 업무 연락을 받고 이메일을 확인한다는 점이다. 휴가지에서는 일 생각에서 벗어나 보려 비행기를 타고, 바다를 건너보아도 이런 직업적 습관은 쉽게 변하지 않았다.

     
    변호사로서 연차가 쌓이며 일과 함께하는 휴가를 심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면서 어느 순간부터 열정적인 휴가보다 약간은 미지근해도 편안함을 더 추구해왔다. 나의 클라이언트, 나의 사건은 다른 사람으로 대체되어서는 안 된다는 책임감 때문인지, 몸을 최대한 사리게 되었다. 특히 개업변호사가 된 이후에는 나 자신이 마치 공공재처럼 느껴져, 위험한 액티비티나 험지로 여행을 가는 것도 피하고, 휴가 이후의 업무에 차질을 주지 않기 위해 컨디션 조절을 하겠다며 10시가 되면 모범적으로 잠을 청하곤 했다.

     
    이러한 일과 휴식의 흐릿한 경계선이 때론 버겁고 힘들었던 적도 많았다. 그런데 정작 그토록 꿈꿔왔던 업무와의 완전한 단절 상황에 처하자 왠지 모를 조급증이 일었다. 누군가 나를 찾지는 않을까 싶어 뜨거워진 스마트폰을 식히기 위해 폰을 꺼둔 그 잠시의 시간을 못 견디고 자꾸만 핸드폰을 켰다 껐다 하고 있었다. 이런 내 모습이 우습기도 하고, 이왕 이렇게 된 거 억울하지 않도록 오래오래 재미있게 변호사 생활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만에 찾은 바닷가에서 현실의 삶을 본다. 아이들과 몸을 써서 놀아주면서 머리를 비우고, 시시껄렁한 농담을 하며 산책을 나가고, 우연히 만난 낯선 사람과 일과 무관한 대화를 해본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저절로 몸과 정신이 단단해지는 느낌이다. 이 모든 재충전의 시간들은 짧은 휴식 이후의 나를 지켜줄 무기가 되어줄 것이다. 비록 업무가 꼬리표처럼 따라오기는 해도 손꼽아 기다린 휴가는 역시 소중하다. 휴가의 마지막 날이다. 다음 휴가지에 대한 계획을 미리 세우고, 이제 일상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김정현 변호사 (법무법인 창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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