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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고의 증거방법 현장검증

    권순건 부장판사 (창원지방법원)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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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에 도로를 새로이 설치·포장하면서 기존 도로를 사실상 폐쇄하여 자신의 집에 원활하게 출입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갑이 공사를 하는 이웃 을을 상대로 제기한 도로 통행 방해금지청구 가처분사건을 심리하였다. 심문기일에 갑의 대리인에게 현장검증이 필요할 것 같다는 취지로 말하자, 갑의 대리인이 빠른 시일 내에 공사현장 주변을 촬영하여 제출하겠다고 답변하였다. 재판장으로서 나는 그러지 말고 현장검증을 신청하라 했고, 그 때서야 갑의 대리인은 현장검증을 신청했다. 그 후 주심판사와 현장검증기일 현장에서 갑과 을, 그리고 각 그 대리인을 만났고 사건과 관련된 각자의 입장, 그리고 그 논거들을 들었다. 재미난 것은 당사자들 상호 간 희망하는 내용이 서로 다르지 않다는 것이었다. 갑은 을이 공사를 빠른 시일 내에 완공하고 자신이 새 도로를 원활히 이용할 수 있기를 희망하는데 을이 공사를 임의로 중단하고 기존도로는 공사로 사용하는 것이 불편하다는 것이고, 을은 갑이 도로 공사에 대하여 행정청에 민원을 넣고 법원에 공사중단신청 등을 하여 공사를 원활히 할 수 없다는 취지였다. 물론 갑과 을 상호간에는 감정의 골과 불신이 있었다. 갑은 을이 새로운 도로를 갑의 집 출입구와 연결하지 않도록 할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는 것이고, 을은 갑이 집 출입구 주변 공사를 하지 못하도록 출입을 제한한다는 말을 들었다는 것이었다. 주심판사가 관련 당사자들의 오해가 해소될 수 있도록 현장에서 각자의 의견을 진술하도록 하여 조서 내용을 정리하였고 현장검증이 끝날 무렵 사실상 조정이 가능한 수준으로 당사자 의견이 상호 간에 일치 되었다. 결국 화해권고결정으로 종국되었다. 당사자들은 여러 차례 재판부가 현장에 나온 것에 대하여 고마워했다.

    변호사들 얘기를 듣다보면, 판사들이 실체적 진실과 다른 사실을 인정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한다. 상대방의 뻔히 보이는 거짓말을 재판부가 믿어 억울한 당사자가 나온다고 한다. 하지만 재판을 함에 있어서 판사로서 가장 두려운 것은 기록 저 편에 있는 실체적 진실과 괴리된 사실을 인정하여 오판할 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내가 인정하는 사실이 실체적 진실에 부합할 수 있도록 아무리 두꺼운 기록이라도 가급적 꼼꼼하게 읽고 최선을 다한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많은 민·형사사건에서 소송대리인들이 아무리 뛰어난 서면이나 영상을 제출하더라도 판사가 직접 현장에서 보는 것보다 판사에게 실체적 진실을 잘 설명할 방법은 없다는 것이다.

    많은 의뢰인들이 변호사들과 미팅하면서 사건을 논하는 외에 술도 함께 마시고 운동도 함께 한다. 정당한 수임료를 지불하면서도 더 많은 시간을 내서 그 변호사들과 시간을 보내는 이유는 사건을 맡는 변호사가 좀 더 자신의 사건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주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변호사들 역시 재판부가 자신이 맡은 사건에 대하여 좀 더 많은 시간을 가지고 고민해주기를 바란다. 현장검증을 하게 되면 그렇지 않은 사건에 비하여 아무래도 재판부가 사건에 할애하는 시간이 많아진다. 그러다보면 기록도 좀 더 자세히 보게 되고 현장검증 전에 재판부 상호간에 의견교환도 나누게 되고, 현장에서 당사자들 얘기도 많이 듣게 된다. 당사자들과 소송대리인들이 그토록 원하는 대로 자신들의 사건에 시간을 좀 더 할애하게 된다. 현장검증만큼 소송참여자에게 절차적 만족감을 주는 증거방법은 없다.

    이와 같이 현장검증은 최고의 증거방법이기는 하지만 현장검증을 다녀오면 업무시간을 상당히 소비하게 되어 이를 꺼리는 재판부도 있다. 그 때문에 갑의 대리인과 같이 재판부에 현장검증 신청하는 것 자체를 부담스러워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현실과 타협하면 우영우 팽나무는 절대 살아남을 수 없다! 사무실과 법정에서 종일을 보내어 운동이 부족한 판사들에게 가끔 운동화를 신고 검증길에 나서게 하는 것도 즐거움 아니겠는가!


    권순건 부장판사 (창원지방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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