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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배님 편하게 말씀 주십시오

    차호동 검사 (대구지방검찰청)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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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 임관한 46기 A 검사가 45기 B 검사에게 인사한다. “잘 부탁드립니다. A 검사입니다!” 45기인 B 검사가 “예, 잘 부탁드립니다”고 대답하고 넉살 좋은 후배는 “선배님 편하게 말씀 주십시오”라고 웃으며 되받는다. A가 한 살 어린 것도 알고 있는 B 검사는 환한 웃음을 지으며 “어 그래. 우리 잘해보자. 모르는 것 있으면 언제든 찾아오고!”라며 흐뭇하게 화답한다. 바야흐로 훈훈한 대한민국 표준 선후배 관계가 시작된 것이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38기 검사 C는 생각한다. 고놈이 고놈인데 다들 귀엽구먼.

    한 살 먼저 태어난, 사법시험에 1년 먼저 합격한 B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영원히 A의 선배가 되어 그 지위에 종속된다. 나이나 경력이나 불과 1년 차이가 날 뿐이지만 B는 무엇이든 A보다 잘 알아야 하고 뭐라도 가르쳐줘야 하는 의무감이 부과되고 왠지 A의 행동도 고쳐주고 싶은 욕구가 무럭무럭 자라난다. A는 1년 후배라는 이유만으로 B에게 그 어떤 싫은 소리도 해서는 안 될 것 같은 느낌이다.

    고놈이 고놈같은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1살 더 많고 학교를 1년 더 다닌 2학년이라는 이유만으로 1학년을 바라보는 시선은 마치 임금께서 백성들을 어여삐 바라보는 눈빛이 되고, 1학년이 2학년을 보는 눈빛은 학교 선생님을 마주 대하는 눈빛이다.

    1년의 나이 차이가 평생의 위계와 지위, 계급을 결정짓는 이유가 어디 있을까. 1년이 기준이라면 1달이 안 될 것은 무엇이고 10년이 안 될 것은 무엇인가.

    상대에게 2인칭 대명사를 사용하는 것이 기피되는 언어-즉 “당신, 너”라는 대명사는 상대를 하대할 때만 사용-는 전세계 207개 언어 중 7개뿐이라고 한다(한국어 외 일본어가 포함). 그러다 보니 우리는 자꾸 다른 호칭을 찾게 된다. 형님 누님 선배님 부장님 사장님. 1년 단위로 계급이 생성되고 그 계급에 영구적으로 종속되면 수평적인 의사소통은 자연스레 억제되고 모든 관계에서 상하관계가 고착된다. 동갑 아니면 친구가 되기도 어렵다.

    오늘 임관한 48기 검사님이 38기 C 검사에게 “C 검사. 나 이거 처음해봐서 잘 모르겠는데 시간될 때 가르쳐줄 수 있어?”라고 말하는 것이 어색하지 않은, 나이와 계급, 존댓말과 반말이 아니라 인품과 서로간의 관계만으로 존중하는 그런 세상을 한번쯤 꿈꿔보면 어떨까.

    오늘 나는 원격화상회의를 통해 미국의 60대 노교수 Bob과 회의를 했다. 나의 첫 마디는 “Hi~ Bob”


    차호동 검사 (대구지방검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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