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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석천의 시놉티콘

    [권석천의 시놉티콘] 바보야, 문제는 센스야!

    권석천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전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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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향이 충청도 쪽이세요?” 

    “아, 어떻게 아셨어요? 외갓집이 충청도인데….”

    어색한 문답이 오간 뒤 침묵이 이어졌다. 얼마 전, 운동을 가르쳐주는 강사 앞에서 준비 자세를 취하던 중이었다. ‘왜 갑자기 고향을 묻는 거지?’ 내 순수한 눈망울에 그의 쓴웃음이 스쳐갔다. “아니, 제 얘기는 동작이 왜 이렇게 굼뜨냐는 거예요!”

    그렇다. 나는 센스 없는 사람이다. 센스 있는 사람은 상대방이 껌을 씹다 버리려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면 티슈를 내민다고 한다. 그렇다면 나는? 음, 이렇게 물어볼 것이다. “왜요? 무슨 일 있어요?” 이런 내가 동병상련을 느끼는 직업인이 있으니, 바로 정치인이다. 그들은 아무리 생각해도 나와 별반 다르지가 않다.

    그래도 민의를 대표하는 정치인이라면 달라야 하는 거 아닌가. 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지는 ‘낄끼빠빠’를 잘해야 하는 거 아닌가. 어찌된 영문인지 우리의 선량한 대표들은 거꾸로 하기 일쑤다. 시민들이 보기에 블랙 코미디 같은 발언과 동작만 반복한다. 사람들이 듣고 싶어하는 말 대신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한다. 분위기 파악 능력이 제로에 가깝다.

    최근 논란의 8할도 이 센스의 부재에서 비롯되고 있다. 맥락도 의미도 안 맞는 워딩(wording)을 내놓고, 시도 때도 없이 객쩍은 소리를 하고, 허세를 부리며 시시껄렁하게 행동한다. 농담이라는 송곳에 찔려본 적이 없어서일까. 동료 정치인이 나서서 한다는 변명이 “겨우 농담인데…”다. 하긴, 정치인들의 센스 없음은 그들이 시민들과 돌떨어진 갑(甲)의 삶을 살아왔기 때문인지 모른다.

    센스 없는 건 못 참는 시대에
    우리의 대표들은 왜 분별없이
    시대에 맞지 않는 말만 할까


    센스가 정치 현안으로 본격 등장한 것은 모바일 시대 들어서다. 현장에서 벌어지는 발언과 장면들이 실시간으로 5000만의 스마트폰에 꽂힌다. 일단 쏟아지고 나면 주워담을 도리가 없다. 누가 무슨 말을 했고, 누가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유튜브 검색만 하면 다 나온다. 그리하여, 센스 없는 이들은 외부에 노출될수록 위험해진다. 자신의 말과 행동이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알 수가 없으니까.

    더구나 요즘 세대는 취향에 민감하다. 다른 건 다 참아도 센스 없는 건 못 참는다. 센스 없이 처신해놓고 “왜들 이토록 민감하냐”고 한다면 결코 용서하지 못한다. 맛집 앞에 몇 시간씩 줄을 서는 이들에게 한국 정치는 맛없고 바가지만 씌우는 ‘평점 1점짜리 식당’일 뿐이다.

    진정성이 중요한 것 아니냐고? 100% 동의한다. 하지만 센스가 빠진 진정성은 ‘앙꼬 빠진 찐빵’, 아니 ‘연애 빠진 로맨스’다. 생각해보라. 센스는 섬세함에서 나오고, 섬세함은 관찰력에서 나온다. 관찰력은? 같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에서 길러진다. 책도 보고, 영화도 보면서 시대의 흐름을 읽는 안목을 키워야 ‘오늘의 일용할 센스’를 유지할 수 있다.

    한 사람이 센스, 즉 분별력을 잃으면 그나마 무례한 사람이 되는데 그친다. 한 집단이 분별력을 잃으면 그들만의 집단의식에 빠져 허우적거리게 된다. 어떤 위기가 닥쳐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무엇이 심각한 일인지, 무엇이 웃어넘길 일인지 구분하지 못한다. 마침내, 그들 스스로 웃지 못할 난센스 퀴즈가 되고 만다.

    다시 그날의 나로 돌아와보자. 운동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그 한마디를 했어야 했는데’하는 후회가 들었다. “내가 그렇게 만만합니까?” 영화 ‘헤어질 결심’의 대사였다. 잠시 후, 신호등 앞에서 나 자신에게 중얼거렸다. “바보야, 넌 박해일이 아니잖아. 문제는 만만한 게 아니라 너의 센스인 거고….”


    권석천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전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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