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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法臺에서

    10년 뒤에 깨어나 묻는다면!!!

    권순건 부장판사 (창원지방법원)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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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디컬론 관련 대법원 판결(2018다295103) 사안이다. 저축은행이 2014년에 의료인에게 1억 원을 연이율 12%, 만기 2년, 매달 원리금 균등 방식의 상환으로 대출하되, 그 의료인은 국민건강보험공단에 가지는 장래 요양 급여채권 30억 원을 담보목적으로 저축은행에 양도하고, 저축은행은 매달 공단으로부터 요양급여를 수령하여 약정 원리금에 우선 충당하고 나머지 금액 전부를 의료인 계좌로 입금시켜주기로 약정했다. 저축은행은 약 2년간 공단으로부터 6억3000만 원 가량을 수령하여 그중 1억2000만 원 가량을 약정원리금에 충당하고 나머지 5억1000만 원 가량을 의료인 계좌로 입금했다. 그런데 문제는 대출 당시 의료인이 채무초과 상태였다는 것이었다(어찌 보면 당연한데, 2014년은 기준금리를 낮추던 시기고, 금리가 2.5%에 불과했는데 환금성과 안정성이 높은 요양 급여채권을 담보로 연 12% 이율로 돈을 빌리는 의료인이라면 그 어떤 곳에서도 돈을 빌리기 힘들었을 것이다). 의료인의 채권자인 원고가 저축은행을 상대로 위 채권양도가 사해행위라며 취소를 구하였고 법원이 이를 인정했는데, 그 취소범위가 대출원리금 충당액 1억2000만 원이 아니라 공단으로부터 지급받은 6억3000만 원 전액이었다. 이유는 수익자인 저축은행이 공단으로부터 지급받은 금원 대부분을 의료인에게 입금했다 하더라도 양도받은 채권 자체를 반환하지 않았으므로 전액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었다(흡사 뇌물 반환과 유사한 판결이다). 저축은행 입장에서는 대출원금 1억 원 가량을 떼였을 뿐만 아니라 정산을 위해 계좌에 보관하기만 하다가 송금한 5억1000만 원 가량을 추가지급하게 되었다. 저축은행 관계자로부터 듣기론 메디컬론 규모가 상당히 컸다고 하는데 빨리 제척기간이 지나가기를 기도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사해행위 취소와 관련된 많은 판례 법리들은 앞에서 본 의료인과 같이 저신용자들의 경제적 회생기회를 박탈한다. 사회적 저신용자들에게 ‘돈을 빌려주고 좀 더 고율의 이율을 받고 싶은’, 혹은 ‘부동산 등을 저가에 매수하고 싶은’ 현실의 많은 사람들에게 법률행위 취소라는 리스크를 부과하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이자율은 더 높아지고 매도하는 부동산 등 채무자 자산의 가격은 더 떨어진다. 채권자 보호에 방점을 두다보니 반대로 저신용 채무자의 파산을 촉진시키고 채권자의 기회주의적 행태가 양산된다. 많은 법조인들이 이 구조를 혁파하고자 수익자의 선의 확대, 사해행위 축소 등 많은 노력을 기울이나 아직까지 대법원은 별다른 반응이 없다. 복잡하고 기교적인 사해행위 법리 속에 점점 일반인의 예측 가능성과 괴리되어 간다. 또한 별반 다를 이유가 없는 파산 등 사건의 부인권 법리와도 궤를 달리해간다.

    반대 사례로 대법원 95도1637 판결을 보자. 피고인이 폭처법위반죄 등으로 징역형에 집행유예를 받고, 그 직후에 같은 죄로 실형을 선고받아 위 집행유예가 실효되어 그 형을 함께 마쳤다. 그 후 야간에 재물을 손괴했다고 공소가 제기되었는데 그 적용법조는 구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2001. 12. 19. 법률 제6534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2조 제3항, 제1항, 형법 제366조였다. 구 폭처법 제2조 제3항은 지금과 유사하게 2회 이상 위 폭처법위반죄로 징역형 처벌을 받은 사람이 같은 죄명의 누범으로 처벌할 경우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도록 규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과거에 아무리 큰 잘못을 했어도 사소한 재물손괴여서 3년 이상의 유기징역형으로는 도저히 처벌할 수 없는 사안은 얼마든지 있다. 위 사건의 하급심 재판부는 묘수를 냈다. 바로 법률조문 중 '누범으로 처벌할 경우'라는 부분을 캐치하여 법원이 구 폭처법 제2조 제1항을 적용하면서 형을 벌금으로 선택할 경우 누범 가중이 불가능하므로 같은 법률 제2조 제3항을 적용할 수 없다고 판단, 벌금형으로 피고인을 처벌했다(누범은 법원이 금고 이상의 형을 선택할 경우에만 적용된다, 대법원 82도1018). 이에 대해 대법원(95도1637)은 이러한 하급심의 판단이 정당하다고 인정했다. 이후 후배 판사들은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5조의4 제5항으로 기소된 절도 사안에서 위 법리에 따라 생리도벽 등이 있거나 아주 경미한 사안 등에서 누범으로 처벌할 수 없다고 봐 벌금형을 선택 선고하게 되었다(목포지원 2021고단822 판결 등). 법 규정을 뚫어지게 보고 세상물정 고민하여 합리적 법리를 만들어낸 것이다.

    대학시절 사법시험 준비할 때, 법학은 자연과학과 많이 다르다고만 생각했다. 법률을 잘 해석하고 사실을 잘 확정하여 적용하면 그에 상응하는 결과가 나오는데 이러한 결론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정했다. 그런데 법원에서 판사 생활을 하면 할수록 법학 역시 자연과학과 마찬가지로 난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도전인 것 같다. 수학자 다비드 힐베르트는, ‘만약 내가 죽은 후 1000년 뒤에 깨어난다면 가장 먼저 리만 가설이 증명되었습니까? 라고 물어본다’고 했다. 10년 뒤에 깨어난다면 나는 “사해행위 취소 법리가 경제적인 관점으로 설명되나요? 유류분 청구권을 회피할 법리 혹은 제도가 탄생했나요? 부동산 명의신탁과 주식 명의신탁 법리가 여전히 다른가요?”라는 질문을, 2년 뒤에 깨어난다면 “검사의 수사 개시 범죄 범위에 관한 규정 개정안 중 어떤 것이 헌법상 법률유보 원칙 심사를 통과했나요? 사법부에 대한 수사 결과는 결국 어찌 되었나요?”라는 질문을 하고 싶다.


    권순건 부장판사 (창원지방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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