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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당히 합시다

    김병철 부장판사(서울동부지방법원)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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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카리 오라모, 오스모 벤스케, 에사 페카 살로넨, 유사 페카 사라스테, 피에타리 인키넨… 참 발음하기도 힘들고 기억하기도 어렵다. 그래도 이 핀란드 출신 지휘자들의 이름은 그들 부모가 생명을 잉태하고 열 달 고생해 세상에 나온 것인 만큼 불러줄 가치가 있다.

     

    그러면 이건 어떤가? 김ㅇㅇ, 이ㅇㅇ, 김ㅁㅁ, 이ㅁㅁ, 김xㅇ, 이xㅁ… 이들은 하나의 판결문에 등장하는 비실명화된 소액 사기 피해자들의 이름이다. 성범죄 피해자에 대한 익명 처리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왜 범위를 모든 형사 사건으로 넓혀 동일성을 확인할 수도 없고 부를 수도 없는 암구호를 만드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공소장 내용 파악도 쉽지 않고 영구보존 문서인 판결문의 기본적 성격과도 어울리지 않는다. 심지어 보호법익상 피해자로 보지 않는 공무집행방해죄의 경찰관 이름까지도 비실명 처리하고 있다. 이런 과잉된 개인정보보호 추세가 계속되면 앞으로 공판 검사와 판사 이름까지도 xx가 될 지도 모르겠다.

     

    엇나간 개인정보보호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우리 나라는 주민등록제도와 국민건강보험제도의 완비로 인해 AI산업과 바이오산업에 더할 나위 없이 데이터가 쌓여왔다. 그런데 이 귀중한 원천데이터의 수집과 이용이 개인정보보호란 명목으로 거의 봉쇄되어 있다. 관련 산업계와 학계가 아무리 데이터를 가공해서 개인식별이 안되게 할 수 있으니 그 수집과 이용을 허락해 달라고 요구해도 혹시나 유출돼 개인이 피해를 보면 어떻게 하냐는 황소 심줄 같은 개인정보보호 신봉주의자들의 아집은 조금도 변함이 없다. 이쯤 되면 이들이 그 도그마에 따라 운행으로 인해 사망자가 나올 게 뻔한 교통수단을 폐기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하지 않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결국 우리는 돈으로 환산할 수도 없는 5000만 명이라는 어마어마한 표본을 사장시키고 있는 반면 법과 원칙보다는 자기 이익을 앞세우는 경쟁국은 우리의 이런 정보를 아무 제한없이 수집하고 가공해 활용하고 있다. 의료 관련 회사 등 우리 스타트업들은 우리나라 안에서 정상적인 연구활동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아 외국에 유사한 회사를 별도로 세워 관련 연구를 진행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우리 나라 국적 법인이 그런 연구를 진행하면 처벌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분리가능한 신체조직 일부의 제공이 필요할 수도 있기에 생체개인정보는 이름, 주민등록번호 등의 정보와는 달리 취급받아야 되고 이런 차원에서 일정한 생명연구 윤리는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연구 윤리 침해의 극악사례인 731부대 세균전 실험결과는 미국이 정당하게 얻은 기존의 연구 결과에 비해 조악하기 그지 없어 악마의 호기심을 충족하는 용도 외에는 큰 쓸모가 없었다.

     

    즉 연구 윤리를 지키면서도 필요한 데이터를 얻을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 우리도 이제는 연구 윤리를 결정하고 법제화함에 있어서 황우석 박사로 인한 트라우마에서 벗어나 열린 마음으로 임할 때도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좁은 땅, 부족한 자원의 대한민국이 믿고 의지할 것은 우리들 자신과 우리가 만들어내는 지적 세계뿐이기 때문이다. 그것만이 우리 대한민국과 그 구성원들의 생존과 번영을 보장할 수 있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김병철 부장판사(서울동부지방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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