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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의 신(新)과 함께

    [법의 신(新)과 함께] 어떤 아버지들

    정혜진 변호사(경기중앙회)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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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가 계속 전화를 안 받으신다. 잠깐 전화를 못 받으시는 일은 있지만, 이렇게 계속하여 전화를 받지 않는 일은 없었다. 아버지와 같이 사는 남동생에게 전화하니 전원이 아예 꺼져 있다. 어제 아버지와 통화한 내용이 떠오르자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민수(가명)가 방에서 혼자 욕하고 싸우고 있다. 다시 입원시켜야 할 것 같아.”

    아버지와 통화할 때 그 내용은 주로 남동생에 관한 걱정이다. 하루 종일 방 안에 틀어박혀 나오지도 않고 혼잣말로 과격한 욕을 하고 때로는 물건을 부수는 증상이 최근 심해지고 있다고 했다. 다른 곳에 살고 있는 딸은 가슴이 타들어 갔다. 112에 전화를 한다. “아버지가 조현병 남동생과 살고 있는데 둘 다 연락이 안 돼요.”

    경찰이 출동했을 때 아버지는 이미 숨져 있었고, 아들은 아무 일 없다는 듯 자기 방에서 TV를 보고 있었다. 자초지종을 묻는 경찰에게 아들은 횡설수설했다. “아버지가 연예인 집단에 넘어갔어요. 국내 연예인들이 너무 나대니까 유럽으로 갔어요. 그래서 정신 차리시라고 주먹으로 때렸죠. CNN과 i24 뉴스에도 나왔어요.”

    국선 사건으로 그 아들의 존속상해치사 사건 변호를 맡았다. 10대 후반부터 사십 대 초반까지 근 30년간 정신병원 입퇴원을 반복해 온 사십 대 초반의 남자는 그 어머니가 일찍 지병으로 세상을 떠난 후로 온전히 아버지의 책임 아래 놓여 있었다. 6개월 전 아버지의 신고와 요청에 의한 강제입원이 마지막 입원이었다. 상태가 호전되지 않았는데 다른 신체적 질병 치료를 위해 잠시 퇴원시킨 게 그만 돌이킬 수 없는 사건을 낳고 말았다.

    경찰들이 탐문 수사를 벌였는데, 피고인 부자가 살았던 아파트의 다른 주민들은 그 아들 때문에 힘들었거나 피해를 본 게 없었다. 이웃들은 피고인 부자를 그냥 조용히 사는 가족으로만 알고 있었다. 수사보고서에서를 읽다가 대법원 판례 공보에서 읽은 다른 사건이 생각났다. 그 아버지도 정신이 온전치 않은 아들과 함께 살았다. 아들이 자기 방에서 불을 질러 그 불이 아파트 옆 호수로 옮겨 붙었다. 옆집 사람들이 연기를 흡입하고 그 집 살림살이도 피해를 입어, 아들과 아버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였다. 법원은, 아버지가 아들의 보호의무자로서 아들의 동태를 잘 살펴 아들이 방화 등 우발적인 행동을 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고, 이러한 우발적인 행동이 있더라도 손해가 발생하거나 확대되지 않도록 미리 대비할 의무가 있다고 전제한 뒤, 아버지에게 “이러한 대비를 게을리한 과실”이 있고, 이러한 감독상 과실이 화재사고 발생원인 중 하나가 되었으며 그 과실과 손해 발생 사이에 인과관계도 인정된다고 하였다(2018다228486).

    조현병 아들을 돌보던 아버지
    발작증세 일으킨 아들 손에 참변
    30년간 아들 보호의무자로 살다
    자신은 보호받지 못하고 떠나


    손해배상 법리로는 이론의 여지가 없는 명백한 결론인데도, ‘이러한 대비를 게을리한 과실’이라는 문구 앞에서 가슴이 먹먹해졌다. 당연한 법문도 상처가 될 수 있음을 처음 알았다. 아들이 혹시나 사고를 치지 않을까하는 가슴 조마조마하게 사는 일상만으로도 만만치 않을 텐데, 통제되지 않는 아들의 우발적 행동을 미연에 방지하지 못했다고, 그런 행동이 있더라도 타인에게 손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대비를 게을리했다는 과실 책임을 묻는 현실이 가혹했다.

    판례의 그 아버지와 달리 내 피고인의 아버지는 평생 ‘그러한 대비를 게을리하지 않고’ 살았던 것 같다. 피고인의 범죄 전력은 전혀 없었다. 아들의 상태가 그럭저럭 괜찮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를 잘 가려 30년간 입퇴원을 적절하게 조율했고, 혹 증상이 심해졌는데 병원에 있지 않았을 때는 아버지가 스스로 방패막이가 되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러한 대비를 게을리한 과실’이 없는 대신에 아버지 자신이 희생양이 되었다.

    “만약에 누군가가 미쳤다면, 나라 안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게 할 것입니다. 그 각각의 친척들이 제 가정들에서 이들을 보호하게 할 것입니다. 그들이 무슨 방법을 쓰든 말입니다.” 2500년 년 전 플라톤이 한 말이다. 법과 제도가 어느 정도 정비되었다고 하지만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이를 가족으로 둔 이들이 그 무거운 보호 의무와 책임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건 수천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은 사실이다. 한 평생 아들의 보호의무자로 살다 끝내 스스로는 보호받지 못하고 돌아가신 내 피고인 아버지의 명복을 비는 동시에, 아들의 방화에 대해 과실 책임을 지게 된 판례 속 아버지께 위로의 말씀 드리고 싶다.


    정혜진 변호사(경기중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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