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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른의 이별

    정거장 검사(서울중앙지검·<슬기로운 검사생활> 저자)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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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사생활을 하면서 가장 힘든 일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을 때면, 나는 이별이라고 답한다. 한 사람의 인생을 좌우하는 결정들에 대한 부담감이나 매일같이 자정 너머에 휴일까지 일해도 줄어들지 않는 사건들, 다 또는 까로 마치는 대화가 자연스러운 딱딱한 공직문화에는 안개비가 옷에 스며들듯 조금씩 익숙해 졌다. 하지만 이별은 몇 번을 거듭해도 늘 처음과 같았다. 어른을 회자정리의 섭리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경지로 정의한다면 나는 겨우 옹알이 단계 정도일까.

    검사는 2년에 한 번씩 임지를 옮기는 탓에 2년마다 직장도, 사는 지역도 바뀐다. 동선에 맞게 물건들을 정리해 둔 집도, 동네 사람들이 잘 모르는 고즈넉한 산책로도, 제법 얼굴을 익혀 계란후라이 정도는 서비스로 내어 주시는 국밥집 사장님도 한꺼번에 사라진다. 또다시 새로 찾고 익혀야 한다. 새로운 지역, 새로운 청사, 새로운 사람들까지. 명랑한 성격이라면 좋으련만 쉽사리 마음을 열지 못하는 성격 탓에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의 첫인사는 늘 어색하기만 하고, 친해지려면 몇 번의 밤이 지나야 한다.

    검사의 주변도 쉼 없이 달라진다. 검찰은 대개 상하반기에 인사이동이 있다. 내가 섬처럼 가만히 있더라도 간부가 바뀌고, 동료가 바뀌고, 직원이 바뀐다. 몇 번의 밤을 거쳐 겨우 친해졌다 싶은 사람들이 어느 날 홀연히 떠나는 상황이 반복된다. 어차피 업무로 만난 사이에 정이나 친분 따위가 필요하겠느냐는 말로 위안 삼아 보지만, 설령 그렇더라도 각자의 업무 스타일에 적응하는 일 또한 녹록지만은 않다.

    간부가 동료가 직원이 바뀌고
    어떨 때는 깊은 슬픔에 젖지만
    당사자는 새로운 시작일 수도
    언제쯤 이별에 익숙해 질까?


    인사에 맞춰 사직하는 검사들도 많다. 승진에서 누락되었다거나 이제는 가족들에게 충실하고 싶다거나 하는 각양각색의 사정으로 사의를 표한다. 선배들이 떠난다면야 동요가 덜 하지만 비슷한 연차의 검사들이 검사게시판에 사직인사를 남기면 착잡함을 넘어서 공허한 마음이 든다. 어린 시절, 해 질 녘까지 같이 놀던 친구들이 하나둘 저녁을 먹겠다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갈 때 느껴지던 헛헛함이랄까.

    그래도 스스로 떠나겠다는 결정을 내린 이들을 지켜보는 편이 낫다. 건강 문제로 어쩔 수 없이 자리를 내려놓는 이들을 볼 때면 며칠 동안 깊은 슬픔에 젖는다. 초임검사 시절, 압수수색을 나갈 인원이 부족해 발만 동동거리던 햇병아리에게 선뜻 “제가 갈게요.”라고 말을 건네주었던 계장님이 간암으로 유명을 달리 하신 날, 격무에 짓눌려 숨이 쉬어지지 않을 때 낚싯대를 빌려주면서 인생 최초로 손맛을 느끼게 해 줬던 동료가 뇌 신경 검사를 받아야 한다며 휴직하던 날이 기억에 선명하다. 출근하지 않는 선배검사를 찾아 집에 가보니 그가 싸늘한 주검으로 누워 있었다거나 직접 동료의 변사 사건을 처리했다는 검사들을 심심찮게 만나볼 수 있다.

    며칠 전, 갑작스레 사직 인사를 했던 후배검사를, 아니 이제 번듯한 법무법인의 대표 변호사를 만났다. 그간 어떻게 지냈냐는 식상한 이야기로 시작한 대화는 검사로서 했던 경험들이 법인을 운영하고, 의뢰인들을 이해하는 데 커다란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로 이어졌다. 한가득 생기가 도는 얼굴이 근황을 대신 말해 주었다. 그래, 나에게는 아쉬운 이별이 당사자들에게는 새로운 시작일 수 있겠구나. 마냥 이별을 아쉬워만 하는 태도가 어쩌면 이기적일 수 있겠다는 생각에 앞으로는 이별 상대방을 한껏 축복해 주어야지, 다짐했다.

    하지만 남은 검사생활 동안 이별이 조금이라도 줄어들길 바라는 마음이 여전한 걸 보니, 인사이동을 할 무렵 실무관님께서 그려주신 초상화와 1년 9개월을 함께 한 두 분의 계장님과 찍은 사진들에 종종 넋을 잃기도 하는 걸 보니, 나는 아직도 걸음마를 떼는 정도까지만 성장을 했나 보다. 언제쯤에나 이별에 익숙해지는 진짜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아니다, 과연 어른이 될 수나 있을는지 모르겠다.


    정거장 검사(서울중앙지검·<슬기로운 검사생활>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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