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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별기고] 론스타 중재판정과 정부 대응의 문제

    곽경직 대표변호사 (법무법인 KNC)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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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는 론스타 중재판정의 취소를 요구하겠다 하지만, 최종 결정을 내리기 전에 문제점을 차분히 따져 보아야 한다. 중재는 재판과 다르다. 재판은 분쟁의 해결만이 아니라 정의의 실현을 궁극적 목적으로 한다. 헌법이 재판의 심리와 판결은 공개한다고 규정하고 있는 이유는, 재판이 사회 구성원 모두의 관심 하에 법의 구체적 의미가 무엇인지 확인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제109조). 같은 이유에서 재판에는 상소 절차를 두어 사실인정과 법 적용이 제대로 되었는지를 끝까지 따져 본다. 그리고 판사는 일의 대가를 국가에서 받는다.

    반면에 중재는 공동체의 관심사인 정의의 실현에는 관심이 없고 분쟁의 해결만이 목적이다. 중재가 대체로 비공개로 이루어지는 건 이 때문이다. 당사자 간의 분쟁해결을 그 업무의 내용으로 하므로, 중재인은 당사자로부터 수고의 대가를 받는다. 중재판정에 대해 취소의 절차가 있지만, 이것은 재판의 상소 절차와 완전히 다르다. 중재합의로 관할권이 성립하고, 중재판정부의 구성과 중재절차의 진행이 형식적·절차적으로 적법하게 이루어지면 그것으로 끝난다. 중재판정의 실체적 판단에 있어 사실인정이 잘못되었거나 법 적용이 잘못되었다는 건 문제가 안 된다. 국제상사중재가 그렇고 투자조약중재도 그렇다.

    론스타 중재에 적용되는 ICSID 협약을 보면, ① 중재판정부가 잘못 구성된 경우, ② 중재판정부가 그 권한을 명백하게 유월(踰越)한 경우(중재 관할권이 없다는 의미이다), ③ 중재판정부의 구성원에게 부패가 있는 경우, ④ 절차의 기본원칙에서 심각하게 일탈한 경우, ⑤ 중재판정이 그 결론에 이른 이유를 진술하지 않았을 경우, 이렇게 5개의 사유로 그 취소사유가 한정되어 있다(제52조 제1항). 한국 정부가 중재판정의 취소를 구할 사유를 하나하나 따져 보면, ①, ②, ③, ④의 사유는 해당하지 아니함이 자명하다. 비빌 언덕이라곤 ⑤의 사유, “중재판정이 그 결론에 이른 이유를 진술하지 않았을 경우”일 터인데, 이것은 말 그대로 이유를 대지 않은 경우이지, 이유로 든 사실인정이나 법 적용이 잘못된 경우를 의미하지 않는다.

    이 쟁점을 이해하는 데는 늑대와 어린 양이 도움이 된다. 늑대가 “네가 작년에 냇가의 물을 흐렸다”라는 이유를 들어 어린 양을 잡아먹었다고 치자. 여기서 어린 양이 작년에 냇가의 물을 흐린 사실이 없다는 점은 취소사유가 안 된다. 냇가의 물을 흐렸다고 해서 잡아먹어도 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법이라는 점 역시 취소사유가 안된다. 왜냐하면 어쨌든, 이유는 댔으니까.

    론스타 중재 판정문을 보면, 중재판정부는 한국 정부가 한국-벨기에·룩셈부르크 양자간투자조약 상의 공정·공평한 대우 의무를 위반하였다는 판단의 이유로 금융위원회가 승인 심사 절차를 지연시켰고, 그것이 “정치인들과 대중의 비판을 피하려는 정치적 동기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공정·공평한 대우 의무를 위반하였다고 판단하였다. 그것으로 이유를 진술한 것임이 명백하다. 정부가 절차를 지연시켜 가격하락에 개입하였다는 사실인정이 잘못되었다거나, 정치적 이유로 절차를 지연시킨 게 공정·공평한 대우 의무를 위반하였다는 법 판단이 잘못되었다는 건 취소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취소 신청이 기각될 게 뻔하지만, 순전한 가정으로 정부가 취소 신청을 하여 몇 해가 지난 뒤 중재판정이 취소되면 어떻게 될까? 중재판정 취소의 사유가 중재 관할권이 없다는 거라면 한국 정부의 승리는 확정되겠지만, 정부가 염두에 두고 있는 취소사유는 그게 아니다. 관할권을 제외한 그 밖에 다른 사유로 중재판정이 취소되면 새로 중재판정부를 구성하여 중재절차를 다시 진행하게 된다. 이유를 진술하지 않았다는 사유로 중재판정이 취소된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새로 진행될 중재가 얼마나 걸릴지? 비용은 얼마나 들지? 종국적으로 승패는 어떻게 될지? 누가 알겠는가?

    패배와 실패, 그리고 모르고 저지른 실수에서 낭패를 보는 일은 항상 있다. 분하더라도 때론 이를 꿀꺽 삼키는 것이 지혜롭고 용기 있는 일일 수 있다. 진짜 중요한 것은 그 경험에서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더 나아지려 노력하느냐에 달려있다.

    금융위원회가 외환은행 지분 매각에 대한 승인 심사를 하면서 법령에 정해진 심사기간을 도과한 것 자체는 위법한 일이 아니다. 심사기간에 관한 규정은 소위 훈시규정이기 때문에 그렇다. 중재판정부도 이 점을 시인하고 있다. 그런데도 중재판정부는 “쟁점은 단순히 지체하였다는 게 아니고, 지체한 동기가 부적절하다는 데 있다”라고 했다(the issue is not simply delay, but improper motive for delay). 그 자체로는 위법하지 아니한 심사기간의 도과가 “정치인들과 대중의 비판을 피하려는 정치적 동기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조약상의 공정·공평한 대우 의무 위반이라 판단한 것이다.

    여기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배워야 할까? 정부 당국이 “국민 정서, 정치권 공세에 떠밀려 매각 승인을 미룬 끝에” 3,000억 원을 훌쩍 넘는 돈을 물어주게 되었으니 앞으로 이런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생각대로라면, 외국인의 투자에 관한 일이라면 국민은 입을 다무는 게 바람직하고, 정치인도 국민의 눈치를 보지 말아야 하며, 정부 당국은 국민과 정치인이 뭐라 하더라도 이를 전적으로 무시하여야 한다. 왜? 안 그러면 또 투자조약중재를 당하고 져서 큰돈을 물어주게 될 것이므로. 이 걱정은 근거가 있다. 론스타 중재판정 말고도 국민의 여론을 좇았다는 이유로 조약상의 공정·공평한 대우 의무를 위반하였다고 판단된 사례는 더 있다.

    스페인 투자자가 멕시코에 유해폐기물 처리 시설을 보유하고 매립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폐기물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고 무단으로 버린 게 발각되고, 주변의 심각한 환경오염에 시달리던 주민들이 항의하여 그 항의가 지역 전체로 번지자 환경 당국은 폐기시설 면허의 갱신을 거부하였다. 스페인 투자자는 멕시코 정부를 상대로 배상을 구하는 투자조약중재를 제기하였고, 이것이 TecMed 사건이다. 2003년 중재판정이 내려졌는데, 중재판정부는 스페인 투자자가 환경 법규를 위반한 사실을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멕시코 정부가 면허 갱신을 거부한 진짜 이유는 국민 여론을 떠밀렸기 때문이라면서 거기서 멕시코 정부의 조치에 대한 위법성을 찾았다.

    그러니, 외국인투자자의 투자에 관한 일이라면 국민은 입을 다물고 정치인은 소리를 내지 말아야 하며 정부는 국민의 여론을 고려하지 말아야 할 것인가? 아니다. 만약 그렇게 해야 한다면, 그건 제대로 된 국가라 할 수 없다. 생각해 보라. 국가는 영토를 바탕으로 거기에 뿌리를 두고 사는 국민이 조직하여 존립하는 정치단체인데, 국민이 영토 내에서 벌어진 일에 관하여 말을 할 수 없고, 정부가 그 말을 무시한다면 어떻게 그 국가가 제대로 존속하고 번영할 수 있겠는가?

    문제는 다른 데 있다. 론스타 중재가 왜 생겼는가? 가만히 있었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터인데, 이 일이 생긴 근본 원인은 한국 정부가 굳이 벨기에·룩셈부르크와 양자간투자조약을 체결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런 조약들이 무엇인지? 이들 조약이 체결된 연유와 경위가 무엇인지? 무슨 소용과 소득이 있는지? 그로 인해 치르게 되는 대가는 무엇인지? 개선할 방도는 없는지? 이런 문제들을 따져 보아야 하는 것 아닌가?


    곽경직 대표변호사 (법무법인 KN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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