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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승철의 문향(文香) 오디세이

    [고승철의 문향(文香) 오디세이] 박경리, 이병주… 양대 문호의 삶과 문학

    “인간을 위한 법이라면 법과 문학은 사촌이고 본질은 모두 같다”

    고승철 언론인·저술가(전 동아일보 출판국장)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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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하소설 『토지』의 첫 장면은 1897년 추석 풍경이다. 조선의 국운이 기울어 일본이 집어삼키기 직전이다. 이 작품은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하동 최 참판 일가의 파란만장한 삶을 그려 ‘국민 소설’ 반열에 올랐다. 주인공 최서희의 차남 최윤국이 학병으로 끌려가면서 대단원의 막이 내린다.

    지리산을 무대로 삼은 대하소설 『지리산』은 학병 징집을 피한 청년들의 항일 투쟁기를 시작으로 해서 광복 이후의 빨치산(파르티잔) 활동상을 다룬다. 실화를 바탕으로 썼기에 역사와 문학을 아우른다.

    문학평론계의 거목 김윤식(1936~2018) 교수는 “대하소설 계보는 『혼불』 『토지』 『지리산』으로 이어진다”면서 『토지』의 작가 박경리(1926~2008), 『지리산』의 저자 이병주(1921~1992)를 한국 소설가 양대 산맥으로 꼽았다.

    지난 몇 달 사이에 『이병주 평전』과 『박경리 이야기』가 나란히 출간되었다. 두 책은 다 ‘벽돌책’ 수준으로 두툼하다. 『이병주 평전』의 저자는 안경환 서울대 명예교수, 『박경리 이야기』의 지은이는 김형국 서울대 명예교수. 안 교수는 서울대 법대 학장을 지낸 법학자, 김 교수는 서울대 환경대학원에서 오래 강의한 도시계획학 석학. 두 저자 모두 문학 전공자는 아닌데 문학의 틀보다 훨씬 넓은 시야로 두 문호(文豪)의 삶과 문학세계를 입체적으로 조명했다. 풍부한 각주를 달아 자료 수집과 집필에 엄청난 품이 들었음을 알 수 있다.

    경남 통영 출신으로 진주여고를 나온 박경리의 본명은 박금이. 필명은 1950년대 문단의 거두 김동리 선생이 지어주었다. 남편과 일찍 사별한 박경리는 혼자서 어렵게 딸을 키웠고 사위 김지하 시인의 옥바라지도 감당해야 했다. 『토지』는 어린 외손자를 등에 업고 집필하는 등 26년 인고(忍苦)의 결실이었다.

    경남 하동 태생인 이병주는 ‘태양에 바래면 역사가 되고 월광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 ‘역사는 산맥을 기록하고 나의 문학은 골짜기를 기록한다’ 등의 아포리즘으로 유명한 소설가이다. 『관부연락선』 『산하』 『그해 5월』 등 한국 현대사를 뼈대로 한 장편소설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 그는 1961년 5·16 군사정변 직후에 언론 필화(筆禍)로 2년 7개월 수감되었는데 이 체험을1965년 『소설·알렉산드리아』로 발표하면서 소설가로 변신했다.

    1970년대, 1980년대에 신문과 잡지의 연재소설이 인기를 끌 때 박경리, 이병주는 단연 ‘스타 작가’였다. 컴퓨터가 없던 시절에 이들은 부지런히 육필 원고를 썼다.

    안경환 교수는 서울대에서 ‘법과 문학’이라는 명강의로 법학도의 시야를 넓히는 데 앞장선 박학한 학자. 조영래 변호사, 황용주 언론인, 윌리엄 더글라스 미국 대법관 등의 평전도 냈다. 김형국 교수는 전공인 도시이론으로 『토지』의 무대 공간을 분석한 인연으로 박경리 여사와 교유를 맺었는데 화가 평전인 『장욱진』과 미학서적인 『우리 미학의 거리를 걷다』 등을 집필할 만큼 미술분야에도 조예가 깊다.

    10월 1일 하동군 이병주 문학관에서는 이병주 타계 30주년 추모 문학제가 열렸는데 이병주 소설을 형법학자 시각으로 해석한 『밤이 깔렸다』의 저자 하태영 동아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연구상을 받았다. 하 교수는 수상소감에서 “인간을 위한 법이라면, 법과 문학은 사촌이고 본질은 같다”고 말했다.

    ‘큰 작가’ 박경리, 이병주의 일대기(一代記)와 문학을 평전으로 완성한 김형국, 안경환 저자의 치열한 소명의식에 머리 숙여 경의를 표한다.


    고승철 언론인·저술가(전 동아일보 출판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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