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사소송법은 가사사건의 토지관할에 관하여 전속관할을 정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재판상 이혼청구의 소는 ① 부부의 보통재판적이 같은 경우 그 관할 가정법원이 ② 부부가 마지막으로 같은 주소지를 가졌던 가정법원의 관할구역 내에 부부 중 어느 한쪽의 보통재판적이 있을 때에는 그 가정법원이 ③ 부부가 마지막으로 생활하던 주소지를 모두 떠난 경우에는 상대방의 보통재판적이 있는 곳의 가정법원이 관할법원이다(가사소송법 제22조). 이 순서는 매우 엄격해서 순서에 반했다는 사유로도 상급법원에서 파기된다.
어느 부부가 혼인생활 중에 제주살이를 결심하고 제주로 이주했다. 불화가 생기자 아내는 아이와 함께 서울로 이사하고 제주지방법원에 이혼청구의 소를 제기하였다. 소장이 법원에 접수된 직후 그 사실을 모른 남편은 본가인 부산으로 이사했고, 직장을 알아보기 위해 서울을 오가던 중 소장부본을 송달받고 필자를 소송대리인으로 선임하였다.
30여년 전 제정된 가사소송법
시대착오적인 것은 아니지만
당사자들 난감한 경우도 발생
도움 줄 수 있는 길 열어둬야
남편이 물었다. 왜 제주에서 이혼재판을 받아야 하죠? 아무 고민 없이 답했다. 법이 그렇게 규정하고 있습니다. 법률의 규정을 듣고 나서 남편이 말했다. 아니 무슨 법이 그런가요. 만약 제가 사나흘만 빨리 이사했거나, 아내가 사나흘만 늦게 소를 제기했다면 부산에서 재판을 하는 것이군요. 그런데 부산에도 우리 가정의 실질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런 우연으로 재판받을 곳이 정해진다니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때는 그저 빙긋이 웃고 말았지만, 눈이 내리는 겨울 어느 날 몹시 추운 새벽에 양쪽 당사자와 양측 소송대리인 모두 제주행 비행기를 타게 되자 새삼 남편이 한 질문을 떠올랐다. 제주에서 이혼재판을 해야 할 당위가 무엇인가. 이혼 당사자는 이미 제주에 살지 않는다. 미성년자녀도, 사실확인서를 작성해 줄 수 있는 사람들도 제주에 거주하지 않는다. 이 사건은 다행스럽게 조기에 조정으로 종결되었다. 하지만 만약 이혼의사나 양육권자 결정에 다툼이 있어 재판과정에서 조정조치나 양육환경조사가 필요했다면 당사자가 모두 제주에 있지 않아 절차 진행에 다른 사건보다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을 것이다.
재판권의 분장관계, 즉 어떤 법원이 그 사건을 담당, 처리할 것인지를 정한 것이 관할이다. 1990. 12. 31. 가사소송법이 제정되기 30여 년 전 제정된 인사소송법은 이혼사건의 관할로 남편의 보통재판적이 있는 곳의 가정법원을 정하였다. 이제 가사소송법이 제정된 지도 30년이 지났다. 현행 가사소송법 규정이 인사소송법 규정처럼 시대착오적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형식에 치우쳐 당사자와 법원 모두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관할을 잠탈하지 않는 범위에서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법은 열어두어야 할 것이다. 특히 가정법원의 후견적 복지적 기능이 강조되는 현재 관할의 의미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배인구 변호사 (법무법인 로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