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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法臺에서

    독자적인 채무불이행유형으로서의 이행거절

    변호사의 청룡언월도(1)

    권순건 부장판사 (창원지방법원)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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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도에 민사단독 재판을 하던 시절의 일이다. 매수인인 원고가 아파트 매도인인 피고를 상대로 이행지체를 원인으로 한 계약해제에 따른 전보배상을 구했다. 당시 아파트 가격이 치솟고 있었고 이에 따라 계약금, 중도금만 지급받은 피고는 원래의 매매계약대로 매도하기 싫었고 이에 ‘공인중개사가 계약의 내용을 잘못 설명하여 착오로 매매계약을 체결한 것이다’는 등등의 항변으로 계약의 구속력에서 빠져나가고 싶어 했다. 피고 대리인은 피고의 항변을 열심히 주장했고, 원고 대리인은 위 항변에 대하여 열심히 반박했다. 그런데 문제는 원고는 피고가 매매계약을 부당하게 빠져나간다고 생각하고 화가 난 나머지 자신이 지급해야 할 잔금의 이행제공 없이 여러 차례 기한을 정하여 매도인에게 소유권이전등기서류를 넘겨줄 것을 요청하기만 했던 것이다. 결국 나는 피고의 소유권이전등기의무를 이행지체에 빠트리기 위하여 원고가 잔금 제공을 해야 했는데 그리하지 않았으므로 피고의 소유권이전등기의무는 이행지체에도 빠지지 아니하였다는 이유로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하지만 이 사안은 이행거절로 법리구성을 했으면 승패가 바뀔 사안이었다.


    양창수 전 대법관께서 교수 시절인 1995년경 발표하신 “독자적인 채무불이행유형으로서의 이행거절” 논문이 있기 전, 거의 모든 법조인들은 채무불이행으로서 이행불능, 이행지체만 검토하여 사건을 해결하려고 했다. 결국 이행이 가능한데도 채무자가 이행하지 않는 대부분의 실무 사례에서는 이행지체가 성립하는지, 성립한다면 어떤 법률효과를 부여하는지에 그 논의를 집중했다. 그런데 매수인이 매도인을 이행지체에 빠지게 하여 계약을 해제하려면, 먼저 채권자가 동시이행관계 등에 있는 자신의 채무를 이행하거나 제공하여야 하고, 그 제공의 정도는 언제든지 현실의 제공을 할 수 있을 정도여야 한다(대법원 79다1910 등).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계약 이행과정에서 예측하지 못한 행위가 발생할 경우 그 대응을 감정적으로 한다. 상대방이 거래 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려고 하면서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면, 채권자는 화가 난 나머지 항의를 하면서 그 의무의 이행을 촉구할 뿐 자신의 의무를 먼저 이행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러한 당사자들을 대리하는 변호사들이 의뢰인 주장을 그 문언 그대로 믿고 법률구성을 이행지체로 하여 상대방에 대하여 채무불이행 책임을 묻게 되면 앞에서 본 사례와 같이 채권자 자신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어이없이 패소하게 마련이다.

    채무자가 이행이 가능함에도 이행을 거절하기 위하여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는 경우는 그 핑계에 합리성이 없으면 이행거절이고(대법원 90다카19906 등), 이 경우 이행거절로 인한 채무불이행책임이 발생하여 별도의 이행최고 없이도 채권자는 계약해제권, 전보배상청구권 등을 갖게 된다. 1995년도의 위 논문 발표 후에 많은 교수, 실무가들이 이에 관한 추가적인 논문을 발표하고 이에 부합하는 많은 판례들이 선고됨으로서 이제는 독자적인 채무불이행 유형으로서 ‘이행거절’ 이론은 보편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데도 아직 실무에서 2018년도의 위 사건의 원고 대리인과 같이 이행거절 유형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를 아직도 이행지체로 해결하려는 소송대리인들이 다수 있다. 특히 매매계약 이외에 지방자치단체, 대형회사들 상호 간에 맺는 복잡한 도급계약, 위임계약, 투자계약 등에서도 이와 같은 실수가 많다. 소송대리인들이 이행거절의 법리를 모른다기보다는 이행을 지연한다는 객관적인 결과에만 집중하여 이를 그대로 주장하면서 생긴 것이 아닐까? 객관적인 결과 이외에 문제 발생 원인에도 집중한다면 이행거절의 법리를 생각해 내고 이를 충분히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객관적 제3자로서 의뢰인들 분쟁의 근원을 좀 더 살피는 습관, 이것이 이행거절을 관우의 청룡언월도와 같은 공격 방법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한다[한편 이행거절과 관련된 법리는 보면 볼수록 실무에서 사건을 해결하는데 엄청난 도움이 된다. 이러한 법리를 발견하지 못하였다면 후배들이 얼마나 고생했을까 하는 생각에 깜짝깜짝 놀라기도 한다. 만일 특허료를 지불해야 한다면 양창수 전 대법관께선 얼마나 많은 돈을 받고 계실까?]


    권순건 부장판사 (창원지방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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