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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法臺에서

    법관의 심판역량 극대화 1부

    변호사의 청룡언월도(2)

    권순건 부장판사 (창원지방법원)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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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도 고등법원 근무하던 시절의 형사사건이다. 피고인이 어린 외국인 아내에게 졸피뎀 등을 먹여 잠을 재운 뒤 집에 방화하여 살해하고 아내의 사망보험금을 청구하여 보험사를 기망하였다는 취지의 공소사실에 대한 항소심 재판이었다. 검사가 제출한 모든 증거들은 직접적인 증거가 아닌 간접증거만 있었지만 그 증거들은 매우 자극적이고 유력하여 공소사실에 관한 고도의 개연성을 보여주고 있었고 언론 등에서도 피고인이 범인인 것으로 단정하고 피고인을 비난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피고인과 변호인은 공소사실을 극구 부인하였다. 주심이었던 나는 ‘혹시 피고인이 범인이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피고인과 변호인의 변소처럼 집에 강도가 들어와 방화를 하였거나 방화가 아닌 누전 등으로 화재가 난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는 자문을 할 수밖에 없었다. 재판부 합의를 위하여 증거기록 10여 책을 보고 또 보았다. 그리고 처음에는 피고인과 변호인의 변소에 힘을 보태고, 나아가 검사가 제출한 모든 증거들을 다하더라도 꼭 피고인이 범인이 아닐 수도 있다는 취지의 무죄판결 초고를 쓰고 며칠을 보내다가 다시 증거기록을 보고 시간대별 피고인의 동선 확인, 외부 침입 가능성 배제, 누전 가능성의 배제 등을 담은 유죄판결 초고를 써보았다. 그 후 두 개의 결론이 다른 초고를 여러 차례 보고 나름의 결론을 내린 후에 재판부 합의를 거친 후에 판결을 선고했다. 한편 우연하게도 그 무렵에 또 다른 피고인이 극구 부인하던 살인사건도 선고하였는데, 공소사실을 직접 목격한 여러 증인들이 있어서 그 진술의 신빙성 여부 등만을 중점적으로 심리하여 앞의 사건에 비하여 비교적 손쉽게 판단할 수 있었다.

    당시 나는 다른 판사, 교수 등 학자들과 함께 법경제학을 연구하던 모임(LEC)에서 법관의 의사결정과 관련된 주제를 연구하고 있었는데, 위 사례들을 생각하면서 다소 엉뚱한 생각을 했다. 판사의 심판역량 역시 한정된 인적·공적 자원이므로 이를 비용으로 간주하여 살펴보면, 판사를 둘러싼 많은 정책적 난제에 있어서 유용한 예측모델을 제시할 수 있지 않을까? 심판역량을 비용으로 환산하면, 매년 판사들의 충원 숫자 및 그 구성원의 나이, 그리고 판사들의 업무를 사법보좌관이나 다른 법원사무직에게 이양할지 여부, 새로운 유형의 사건이 생겼을 때 이를 사법부가 담당할 것인지 여부, 만일 사법부가 담당한다면 어떤 재판유형을 택할 것인지 등등의 난제에서 시사점을 줄 수 있다고 여겼다. 다만 이 글을 읽는 대다수가 송무를 담당하는 변호사이므로, 심판역량 비용논의를 ‘판결을 하는 법관의 의사결정과정’에 국한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1) 법관은 담당하는 모든 사건을 처리함에 있어서 하나하나의 사건처리에 모든 심판역량을 투입할까? 아니면 사건별로 강약을 조절하면서 자신의 심판역량을 배분할까? (2) 그리고 하나의 사건을 처리함에 있어서 당사자가 주장한 모든 쟁점에 대하여 동일한 심판역량을 기울여 판단할 것인가? 아니면 이것도 강약을 조절하면서 쟁점별로 심판역량을 배분할까? 실무를 경험해본 판사나 변호사는 위 두 개의 질문에 대한 답을 알고 있다. 판사들은 사건별로, 그리고 쟁점별로 강약을 조절하여 심판역량을 배분하여 심판한다.

    그런데 공적자원인 판사의 심판역량이 소진되거나 기타 여러 이유로 발휘하기 힘든 경우에, 판사는 기계적인 사건처리에 매몰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복잡한 실체 심리를 피하기 위해 형식적인 내용에 중점을 두고 별다른 석명 없이 변호사의 실수를 이유로 소각하를 한다든지, 주장 자체로 이유 없다는 형식적 판단을 하거나, 통상의 사건과 상이점이 크거나 특수성이 있어서 권리구제 필요성이 큰데도 불구하고 그 특별한 사정 등에 대한 심도 있는 검토 없이 결과를 도출할 가능성이 높다. 형사재판에서도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에 대하여 비판적인 시각을 갖지 않게 되어 손쉬운 유죄판결을 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변호사 입장에서는 담당 판사가 위와 같이 심판역량이 소진되었다면 걱정이 꽤 클 수밖에 없다. 변호사 입장에서는 담당 판사가 자신의 사건과 의뢰인의 억울한 점에 그 심판역량을 집중하여 의뢰인 승소라는 정의가 세워지기를 희망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판사가 내가 대리하는 사건, 그리고 그 사건의 중요한 쟁점에 그 심판역량을 최대한 배분할 수 있도록 행동해야 할 것인가? 다음 편으로 그 이야기를 이어가도록 하겠다.


    권순건 부장판사 (창원지방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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