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설픈 건강 철학은 미신이다. 대표적인 것이 ‘적게 먹어야 장수한다’는 소식주의(小食主義)이다. 오래전부터 효모균, 회충, 파리, 쥐 등을 상대로 한 실험에서 에너지 섭취를 제한하면 노화 지연 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가 이어졌다. 예를 들어 쥐에게 장기간 열량을 제한했더니 체질량지수가 개선되고 만성질환 위험이 감소하고 수명이 연장되었다. 2009년에는 미국 위스콘신대학교 연구진이 영장류인 붉은털원숭이를 상대로 20년에 걸쳐 열량 제한 실험을 한 결과를 발표했다. 통제집단에게는 풍족하게 먹이를 주고 실험집단에게는 그보다 30% 적은 먹이를 주었다. 실험집단은 당뇨, 암, 심혈관질환 등이 적었고 평균적으로 더 오래 살았다. 이쯤 되면 소식주의는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동물실험 결과를 인간에 적용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동물실험에서는 통제집단이 먹이를 마음대로(ad libitum) 먹도록 허용한다. 사람으로 치면 매 끼니마다 뷔페에서 맛있는 음식을 무제한 먹이는 격이다. 운동 못하고 그렇게 먹으면 고도 비만이 될 수밖에 없고 만성질환이 조기에 발병할 것이다. 실험집단이 30% 덜 먹는 것은 소식이 아니라 과식하지 않은 것이다. 동물실험 결과는 소식 장수가 아니라 과식 단명을 증명했을 뿐이다.
2009년 원숭이 연구에서 실험집단(왼쪽 원숭이)은 적정량을 먹어 건강하고, 통제 집단(오른쪽 원숭이)은 마음대로 먹고 비만해져 더 늙어 보인다. 동물 연구가 소식 장수 연구가 아니라 과식 단명 연구임을 보여준다.
2012년 발표된 원숭이 연구에서는 의외로 통제집단과 실험집단 간에 별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9년 연구결과와 상반된 것처럼 보이지만 두 연구를 비교하면 연구 설계에 중요한 차이가 있다. 2009년 연구에서는 가공식품을 먹였지만 2012년 연구에서는 자연음식을 먹였고 통제집단에게 약간 덜 먹게 했다. 채소 등 자연음식은 열량 밀도가 낮기 때문에 2012년 연구에서는 통제집단 원숭이들이 나름 배불리 먹고도 비만이 되지 않았다. 음식의 양보다 질이 건강에 더 중요함을 알 수 있다.
동물실험에서 주목할 점은 열량을 제한하더라도 필요한 영양은 섭취하도록 되어 있다는 점이다. 영양 결핍으로 인한 위험 요인은 배제되는 실험조건이다. 결국 실험집단 동물의 노화 지연 현상은 적게 먹었기 때문이 아니라 적정량을 섭취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소식주의에 집착하면 적정량보다 적게 먹으려고 애쓰는 경향이 있다. 이렇게 먹으면 영양실조나 영양 불균형에 빠지게 된다. 또 뇌가 습관적으로 배고픔을 느끼게 되면 대사가 느려지고 저장능력은 커지기 때문에 체중 관리가 쉽지 않게 된다. 이런 이유로 억지로 감량하면 반드시 요요현상이 온다.
‘적게 자주 먹어야 한다’는 주장도 이제는 구식이다. 대개 탄수화물 위주로 먹는 사람이 쉽게 배가 고파져 자주 먹게 된다. 열량 밀도 낮은 음식을 하루 5~6끼 먹으면 콜레스테롤 수준은 관리될지 몰라도 혈당은 떨어지지 않는다.
나이 들어 신체 활동과 대사가 줄어들면 음식 섭취량은 자연스럽게 줄어든다. 일부러 소식까지 하게 되면 체력과 면역력이 떨어지고 노화가 빨라진다. 근감소증, 골다공증도 나타나기 쉽고 낙상 사고로 인한 단명 위험도 커진다. 나이가 들수록 균형 있게 잘 먹어야 건강하다. 장수 노인들은 소식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정확히 따져보면 적정량을 드시고 과식하지 않는 분들이다. 건강하려면 미신을 버려야 한다. ‘적게 먹어야 장수한다’고 말할 것이 아니라 ‘골고루 잘 먹어야 장수한다’고 말해야 한다.
고승덕 변호사 (한국청소년쉼터협의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