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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상으로 만나는 클래식

    [영상으로 만나는 클래식] 다니엘 바렌보임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유형종 대표(무지크바움·음악&무용 칼럼니스트)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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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영국의 텔레그라프는 특이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살아있는 사람 중 세계 최고의 천재 100명을 선정한 것이다. 물론 여기서 천재라 함은 지능지수를 따진 것이 아니다. 패러다임 전환, 대중적 찬사, 지적 능력, 성취, 문화적 중요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영국의 지성인 4000명에게 설문 조사한 결과였다. 당연히 영미권에 편향된 결과가 나왔지만 이스라엘 지휘자 겸 피아니스트 다니엘 바렌보임이 19위에 오른 것이 인상적이었다. 클래식 음악인 중에는 미국의 미니멀리즘 작곡가 필립 글래스(9위)에 이은 두 번째 순위였다. 바렌보임은 암보 능력이 무척 뛰어나다고 한다. 그 길고 복잡한 오케스트라 총보를 외워서 지휘한다. 연주자 중에 이처럼 악보를 사진 찍듯 기억해 한 번 공부하면 좀처럼 잊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기는 하다. 물론 바렌보임의 천재성은 이런 면에 국한되지 않는다. 팔레스타인에 대한 조국 이스라엘 정부의 태도를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청년 연주자들을 함께 모은 웨스트이스트 디반 오케스트라를 조직해 20년 훌쩍 넘게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게다가 유대인들이 싫어하는 바그너 음악에 있어서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지휘자이니 그 활동반경은 무시무시할 지경이다.



    바렌보임은 1942년 11월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출생해 10살 때 부모의 나라 이스라엘로 이주했다. 어릴 적부터 피아노 신동으로 불렸지만 테크닉으로 승부하는 기교파는 아니었다. 작은 키에 뭉툭한 손가락을 지닌 바렌보임의 무기는 본능적인 음악성이었고, 손가락에 마치 전자 센서라도 달린 듯 지극히 섬세한 터치를 해낸다. 영국 첼리스트 자클린 뒤 프레가 유대교로 개종을 불사하며 바렌보임과 결혼한 것도 천재성에 반한 탓이라고 한다. 지휘자로는 1975년부터 1989년까지 파리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을 맡으며 세계적 거장의 반열에 올랐다. 당연히 피아노를 칠 기회는 줄어들었지만 필요한 만큼의 피아노 콘서트는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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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편 루트비히 판 베토벤(1770~1828)을 상징하는 최고의 장르는 피아노 소나타다. 32곡이나 썼고, 최만년을 제외한 거의 전 생애에 걸쳐 꾸준히 작곡했으니 갈수록 성숙해 가는 위대한 작곡가의 숨결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바렌보임은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을 시리즈로 가장 많이 연주한 피아니스트일 것이다. 1960년(18세) 텔아비브를 시작으로 한 도시에 보름 정도 머물면서 보통 8회로 나누어 전곡을 소화하곤 했다. 전곡 음반도 있고, DVD로 발매된 2005년 베를린 실황은 거장의 손끝에서 살아나는 마법 같은 터치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최고의 향연이다. 2011년 이후 베토벤 사이클을 멈추었던 바렌보임은 빈 필의 신년음악회가 열리는 무지크페라인 홀의 요청을 받고 마지막 장정을 준비하다가 코로나로 인해 프로젝트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이를 대체해 2020년 5월 베를린의 불레즈 홀에서 무관객으로 전곡을 촬영했고 그 영상이 곧 발매된다. 불레즈 홀은 베를린의 운터 반 린덴에 있는 국립오페라극장에 새로 만들어진 아담한 소공연장이다. 바렌보임은 1992년 베를린 국립오페라의 음악감독으로 부임해 30년이나 이끌고 있는데, 불레즈 홀 역시 바렌보임의 주도로 만들어졌고 이름은 그가 존경한 프랑스의 현대 작곡가이자 지휘자 피에르 불레즈로부터 따왔다.

    78세 바렌보임의 손끝은 15년 전에 비해 좀 무뎌졌음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섬세한 터치와 베토벤다운 소리는 과연 바렌보임답다. 이번에는 19세기의 지휘자 겸 피아니스트 한스 폰 뷜로가 주석을 단 악보를 면밀히 분석해 핑거링 등에 반영했다고 한다. 또 하나 특이한 점은 바렌보임의 아이디어를 반영해 건반에 연결된 모든 현을 일렬로 배치한 새로운 피아노로 연주했다는 것이다. 벨기에의 크리스 멘느가 제작한 이 피아노에는 ‘바렌보임’이란 이름이 붙었다.


    유형종 대표(무지크바움·음악&무용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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