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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병직 편집인 칼럼

    [차병직 편집인 칼럼] 최소의 요구, 최대의 기대

    차병직 변호사(법무법인 한결·공동 편집인)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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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년 전의 일이다. 신입 변호사들이 점심 식사를 하면서 일제히 받은 이메일 내용을 화제 삼아 이야기하고 있었다. 누군가 연구 목적으로 돌린 설문조사 형식의 메일이었는데, “판사가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자질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었다.

    제시된 항목은 열 개 남짓으로 꽤 많았다. 법률 지식은 기본이었다. 그것도 정확하고 풍부할 것을 요구했다. 정의감이나 강직성이 뒤따랐다. 청렴성도 빼놓을 수 없었을 터이다. 법률 이외의 지식과 폭넓은 세계관도 적혀 있었다. 없는 것보다야 있는 것이 좋은 판결로 이어질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역사관에다 국가관도 포함되었는데, 가끔 국민의 자존심이 걸린 재판도 등장한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성실성도 당연해 보였던 것은 재판을 마냥 미루어 당사자를 지치게 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경청하는 태도 같은 세세한 항목도 있었는데, 눈에 띄는 하나는 친절이었다. 친절하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친절하게만 해서 제대로 재판이 될까라는 엉뚱한 생각도 들었다. 체력이라는 현실적 요건이나 현명함 같은 극히 추상적 덕목이 빠진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호기심이 발동해서 질문을 던졌다. “그런 요건을 모두 갖춘 판사가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는가?” 아무 대답이 없었다. "그런 판사가 한 사람이라도 존재한다고 생각하는가?" 돌아온 것은 애매한 미소뿐이었다. “우리나라가 아니라 전 세계에 그런 판사가 몇이나 있을 것 같은가?” “판사가 아니라 성직자를 포함한 모든 인간 중에 그런 사람이 있는가?” 질문이 거듭될수록 대답의 기미는 없었다.

    우리는 구호를 외치듯 습관적으로 법관의 조건을 논한다. 과도해 보이는 듯한 요구 사항을 액면 그대로 고집한다면, 그것은 판사라는 직책을 아무에게나 맡길 수 없다는 공적 의식의 발로라기보다는 누구라도 진짜 판사가 될 수 없다는 시기와 질투가 투영된 반작용이다. 그러나 일반의 감각에서 판사의 자격으로 요구하는 내용은 결코 진의가 아니거나 과장된 허구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내세우는 형식은 절대적이나 실제 기대하는 내용은 상대적이다. 보통사람들보다는 좀 나은 수준일 것을 희망한다. 평균인 정도면 충분하다는 태도가 반영된 것이 배심제라면, 전문법관제에 기대하는 것은 보통 이상일 수밖에 없다.

    판사의 덕목과 훌륭한 재판 인과관계 불명
    검증은 결국 재판 절차를 통한 추정에 불과
    전국 변호사회의 법관 평가도 그중에 하나
    그럼에도 현실에서 최소한의 검증은 불가피


    자격은 최소한의 요건을 충족시키면 된다. 비현실적 요건은 그 자리에 적합한 인물을 고르기 위한 기준이 아니라 불만 해소를 위한 희생양을 앉히기 위한 장치에 불과하다. 최소한으로 요구하는 자격에 기대하는 것은 최대한의 효과다. 일상의 실망과 비애는 거기서 비롯하지만, 최대한의 기대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최소한의 검증이다. 우리가 전제한 덕목들은 추상적이고, 개별 판사의 자질과 개성은 다양하다. 검증은 결국 특정 판사의 실체를 파헤치는 것이 아니라 재판의 절차를 통해 추정하는 것에 불과하다.

    변호사회의 법관 평가 작업도 그 중의 하나다. 시행 15년째를 맞아 전국 변호사회가 지난 11일로 평가 마감일을 통일했고, 다음 달 초 발표한다. 결과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지만, 노래를 듣고 그 가수의 품성을 단정하는 식의 감성적 평가만 아니라면 취지는 분명하다.

    일반 국민이 판사나 법원에 기대하는 것은 실수가 없는 공정한 재판이고, 구체적 당사자가 원하는 것은 자기에게 유리한 결론이다. 판사에게 요구하는 이상적 덕목과 훌륭한 재판의 인과관계가 어떠한지 확실하지도 않다. 법정에서 관찰한 재판 절차의 이행 과정을 통해 그 판사의 능력이나 실체를 판단하는 일이 가능한가도 의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의 효과를 기대하는 최소의 검증은 불가피한 것이다. 현실의 인간 법정에서는.


    차병직 변호사(법무법인 한결·공동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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