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식습관의 모델은 음식의 절반은 채소와 과일로, 나머지 절반은 단백질과 탄수화물로 먹는 것이다. 그런데 식단 구성 뿐 아니라 식사 순서도 중요하다.열량과 식단이 동일하더라도 음식 먹는 순서에 따라 식후 혈당, 인슐린 반응 등에 미치는 효과가 현저하게 달라진다. 미국의 웨일 코넬 의과대학에서 비만한 당뇨 환자 11명을 대상으로 동일한 식단을 음식 먹는 순서만 바꾸어 섭취하도록 하고 식후 혈당과 인슐린 수준을 측정했다(2015년 논문). 탄수화물을 먹고 15분 후에 단백질과 채소를 먹은 경우와 채소와 단백질을먹고 15분 후에 탄수화물을 먹은 경우를 비교한 결과 후자의 경우가 식후 혈당이 식사 30분 후 29%, 60분 후 37%, 120분 후 17% 더 낮고 혈중 인슐린도 현저하게 낮았다.싱가포르에서는 건강한 중국인 16명을 대상으로 연구했다(2020년 논문). 식사 순서를 5가지로 나누어 쌀을 먼저 먹고 채소와 고기를 같이 먹은 경우, 채소를 먼저 먹고 고기와 쌀을 같이 먹은 경우, 고기를 먼저 먹고 채소와 쌀을 같이 먹은 경우, 채소를 가장 먼저 먹고 다음에 고기를 먹고 맨 나중에 쌀을 먹은 경우, 세 가지 음식을 함께 먹은 경우의 식사 3시간 후의 혈당, 인슐린 수준 등을 각각 측정했다. 쌀을 먼저 먹은 경우가 나머지 모든 경우보다 혈당이 더 높았고, 채소를 가장 먼저 먹고 다음에 고기를 먹고 맨 나중에 쌀을 먹은 경우가 나머지 모든 경우보다 혈중 인슐린이 가장 낮았다.채소를 먼저 먹으면 과식 방지에 도움이 된다. 포만감을 느끼게 하는 호르몬인 렙틴은 식사를 시작한 후 15~20분 지나야 분비되기 시작한다. 처음부터 고기나 밥을 먹기 시작해서 포만감을 느낄 때까지 먹으면 과식한 상태가 되기 쉽다. 채소는 칼로리는 적지만 포만감을 준다. 섬유질은 위장에서 쉽게 분해되지 않아 식사 중에도 포만감이 유지된다. 채소를 먼저 먹고 고기나 밥을 먹으면 필요한 열량 이상 먹게 되는 충동이 억제된다.탄수화물은 빨리 흡수되므로 식후 혈당을 빨리 올리는 음식이다. 채소의 섬유질은 위장에서 탄수화물, 지방산 등을 붙잡아 흡수를 느리게 하기 때문에 혈당 급상승(spike)을 억제하고 지방산 흡수율을 낮추어 혈당과 지질 관리에 도움이 된다. 단백질은 위의 운동을 느리게 해서 탄수화물 흡수 속도를 늦춘다. 채소의 섬유질은 고기가 소화될 때 발생하는 나쁜 노폐물을 흡착하기 때문에 단백질보다 먼저 먹으면 장 보호 효과도 좋아진다.우리가 주식으로 먹는 밥, 빵, 면은 덜 씹고도 삼킬 수 있는 음식이다. 탄수화물 음식을 먼저 먹으면 배고픈 상태에서 빨리 먹게 된다. 반면에 채소는 섬유질이 많아서 잘 씹어야 한다. 채소를 맨 처음 먹게 되면 나중에 먹는 음식도 찬찬히 씹게 된다. 채소와 단백질을 적정 비율만큼 먹고 나면 탄수화물이 들어갈 공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탄수화물 섭취가 줄어든다.중국 요리에서 면이나 밥이 맨 나중에 나오고 서양 요리에서 샐러드가 맨 처음에, 파스타 등이 맨 나중에 나오는 것에는 과학적으로 이유가 있다. 건강을 생각한다면 밥과 반찬을 함께 먹는 것보다는 채소(나물 포함), 단백질(고기, 생선, 두부 등), 탄수화물(밥, 빵, 면)의 순으로 먹는 것이 답이다.고승덕 변호사 (한국청소년쉼터협의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