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오페라 세리아(Opera Seria)’를 비극 오페라로 생각한다.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 푸치니의 <라 보엠> 등등… 하지만 오해다. 세리아는 슬픈 게 아니라 진지하다(심각)는 뜻이며, 원래 오페라 세리아란 18세기의 진지한 오페라를 가리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전형은 바로크 후기의 이탈리아 오페라들이다.

<리날도>(1711)는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1685~1759)이 런던을 겨냥해 작곡한 초기 세리아다. 십자군 시기의 예루살렘이라는 배경, '울게 내버려 두소서(Lascia ch'io pianga)'를 비롯한 매력적인 노래에 힘입어 바로크 시대의 인기 오페라로 남았다. 독일 태생인 헨델은 오페라 공부를 이탈리아에서 마쳤고, 영국에서 활동하다가 영국인으로 죽었다. 그렇다면 <리날도>는 어느 나라 오페라일까? 오페라의 기본 속성은 언어에 좌우되므로 이탈리아 오페라로 보는 것이 최선의 답이다. 당시 유럽을 풍미한 오페라 세리아는 문제점도 많았다. 드라마와 음악의 조화를 꾀한다는 오페라 탄생 초기의 정신보다는 카스트라토(거세한 남성 고음가수)로 대표되는 스타 마케팅, 다카포 아리아를 이용한 성악적 기교의 난무, 호사스런 무대장치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소재는 보통 신화 혹은 신화화된 역사에서 따오는데, 여섯 명 이상의 독창자가 필요하며 그중 두 쌍이 극의 핵심이다. 네 남녀의 애증관계가 교차하다가 원래대로, 혹은 질서에 맞게 회복되는 해피엔딩이 세리아의 공식이다. <리날도>에서는 십자군 용장 리날도(카스트라토)와 약혼녀 알미레나(소프라노), 이슬람 영웅 아르간테(베이스)와 여성 마법사 아르미다(소프라노)가 주인공 두 쌍이다. 아르간테는 납치한 알미레나에게 반하고, 아르미다는 연인을 구하러 온 리날도에게 매료되면서 애정관계가 꼬이다가 십자군의 승리와 더불어 해결된다.
<리날도>의 상업용 영상은 제법 많지만 오늘 소개하는 것은 코로나 위기 상황이었던 2020년 9월 피렌체의 마지오 무지칼레 피오렌티노 실황이다. 이탈리아 거장 피에르 루이지 피치가 연출했는데, 2007년 우리나라 민간단체인 한국오페라단이 그를 초청해 예술의전당에 올렸던 것과 같은 프로덕션이기에 더욱 관심이 간다. 막이 열리면 십자군 총사령관 고프레도와 그의 부하장군 리날도가 등장한다. 그런데 갑옷을 입은 두 사람은 단 위에 서있다. 단에는 바퀴가 달려있고, 검은 옷을 입은 보조 인력들이 밀어서 이동시킨다. 그야말로 석상화된, 신화적인 영웅들임을 상징한다. 이슬람의 아르간테가 고프레도를 찾아와 휴전을 제안하는데, 그는 말 조각상을 타고 무대를 압도하는 붉은 망토를 휘날린다. 조금 전까지 푸른색 위주의 조명이 사용된 것은 기독교 세력권을 가리킨 것이고, 붉은색은 이교도의 상징이다. 여자마법사 아르미다는 용이 끄는 전차를 타고 나타나는데 역시 붉은 망토를 두르고 있다. 푸른색과 붉은색의 뚜렷한 대조는 무척 인상적이고, 특히 거대한 망토의 펄럭임은 관객을 무대 위로 빨아들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위력적이다. 시각적으로 멋있지만 한편으로는 비현실적 상황임을 의도적으로 상기시키는 장치여서 바로크 오페라 세리아의 전반적인 문제였으며, 나아가 십자군 관련 문학의 ‘허장성세’를 일깨워준 절묘한 장치라고 생각된다. 모든 등장인물이 단 위에 선 채 이동하며 조각상처럼 서있거나 배나 말에 올라탄 설정은 마치 유럽의 박물관에 와있는 느낌인데, 이로 인해 무대 위의 활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약점을 단을 이동시키면서 해결한 것은 정말 탁월한 아이디어다.
무대장치가로 경력을 시작한 피치는 미술적 감각이 탁월해서 무대와 의상디자인까지 직접 해내는 인물이다. 워낙 다작의 활동가이기에 몇 가지 패턴 안에서 움직인다는 다양성의 한계는 있지만 극적, 음악적 핵심을 단번에 파악하고 여기에 집중하는 능력은 정말 탁월하다. 본 실황 당시 피치는 만 90세가 되었지만 여전히 활기찬 모습으로 커튼콜 무대를 주도하면서 건강한 노익장을 과시했다.
유형종 음악&무용칼럼니스트·무지크바움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