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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승철의 문향(文香) 오디세이] 몽테뉴 《수상록》,《에세》로 거듭나다

    고승철 언론인·저술가(전 동아일보 출판국장)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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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벤처 대부’라 불린 미래산업 창업자 정문술 회장의 자택 서재를 둘러보고 놀란 적이 있다. 서가에 동서고금의 다양한 양서가 꽂혀 있고 대부분의 책에는 손때가 묻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유난히 두툼한 《수상록》이 눈에 띄기에 꺼내 펼쳐 봤다. 곳곳에 밑줄이 그어져 있었다.

    미셸 드 몽테뉴(1533~1592)의 이 저서가 세월이 5백 년 가까이 흐른 오늘날까지 어떻게 생명력을 유지하면서 한국 기업인의 독서 의욕을 자극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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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의 지혜가 그득한 책입니다. 치열한 사색의 결과물인데 여느 철학자의 공허한 이론과는 달리 일상생활에서의 지침을 제공하므로 수시로 들추어 보지요.”

    ‘독서애호가’ 정 회장은 이렇게 소회를 밝혔다. 필자도 자극을 받아 1세대 불문학자 손우성 선생의 번역본을 사서 읽었다. 삶과 죽음 같은 거창한 주제뿐 아니라 자녀교육, 잠, 외모, 우정, 거짓말 등 소소한 문제까지 모두 107개 이야기를 담은 명저였다. 그리스 고전을 인용하는가 하면 자신의 이런저런 경험담을 진솔하게 털어놓았다.

    몽테뉴의 생애도 흥미로워 여러 관련 자료를 찾아보았다. 포도주 명산지인 프랑스 보르도 지역의 재력가인 아버지는 어린 아들 몽테뉴에게 조기교육, 선행학습을 시켰다. 라틴어를 익히도록 가정교사, 유모, 가정부 모두 라틴어 구사자를 구했다. 몽테뉴가 정규 학교에 입학했을 때 라틴어 고전을 줄줄 읽어 교사들을 경악케 했으나 정작 프랑스어가 서툴러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했다.

    몽테뉴는 법학을 전공하여 보르도 고등법원에서 판사로 13년간 근무했다. 자유로운 정신의 소유자여서 일찌감치 법복을 벗고 귀향하여 독서, 사색, 집필에 몰두했다. 법에 관한 그의 관점은 다음과 같다.

    ‘사람들이 법을 믿는 이유는 그것이 공정해서가 아니라 법이기 때문이다. 법은 때때로 어리석은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다. 더 고약한 것은 가끔 공정하지 못한 자에 의해 만들어지기도 한다는 점이다.’

    유럽지성사 권위자인 역사학자 이광주 교수도 몽테뉴 《수상록》 애독자이다. 그는 저서에서 다음과 같이 사연을 밝혔다.

    ‘20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나는 한 해에 두세 번, 특히 한유(閑遊)의 시간을 골라 이 책을 펼쳐든다. 그럴 때면 몽테뉴는 어김없이 독서의 참맛을, 약간 과장하면 살맛 나는 서중선(書中仙)의 세계를 나의 둘레에 펼쳐준다.’

    올 여름에 이 책의 새로운 번역본 《에세》가 나왔다. 1588년판 보르도본(本)을 완역했다. 번역자는 불문학자 심민화, 최권행 교수. 2006년에 작업을 시작하여 각고 끝에 마무리했단다. ‘에세이(essay)’의 기원이 된 원제 《Les Essais》를 존중하여 제목도 《에세》로 정한 모양이다. 3권 짜리로 나왔는데 내용을 살펴보니 어느 한 곳 허투루 번역한 데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완벽에 가깝다. 번역자에게 머리 숙여 경의를 표한다. 양장본 디자인도 미려해 책을 만지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진다.

    현실 문제가 복잡하고 해법 찾기가 어려울수록 선현의 통찰력이 그리워진다. 정문술 회장은 오래 된 고전에서 미래를 찾은 듯하다. 그는 사재 수백 억 원을 카이스트에 기부하면서 이광형 교수에게 “한국의 미래를 밝히는 데 써달라”고 요청했다 한다.


    고승철 언론인·저술가(전 동아일보 출판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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