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연초부터 세계 각국에 빠른 속도로 퍼져나간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은 3월이 되자 WHO(세계보건기구)로부터 팬데믹(대역병)으로 선언되었다. 유행 초기에 워낙 치사율이 높았기에 공포의 대상이었는데, 한때 가장 위험한 곳으로 불렸던 이탈리아 북부의 중세도시 베르가모의 경우 지역일간지의 가장 많은 면을 사망자 부고로 채울 정도였다. 어찌 이탈리아만 그랬으랴. 시차가 있었을 뿐 여러 나라 여러 도시로 확산되었고, 통일 독일의 수도이자 세계 예술의 중심으로 떠오른 베를린도 예외는 아니었다. 베를린 필을 비롯해 위대한 오케스트라들의 경연장이자 세계적인 오페라하우스를 세 개나 보유한 베를린은 각국에서 모여든 음악가들이 워낙 많이 거주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들은 공연장이 폐쇄되면서 연주할 공간을 잃었고, 수입이 끊긴 것은 물론 한꺼번에 청중이 사라졌다는 정신적 공황 상태에 빠졌다. 그런 와중에 공개 콘서트는 아닐지언정 베를린의 일급 연주자들이 일련의 무관객 실내악 콘서트를 열고 그 영상 기록을 유통시키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클래식 다큐멘터리 감독 얀 슈미트-가레(1월 5일 자에 소개한 음악 다큐멘터리 <신성한 노래의 불꽃>의 연출자)는 왜 코로나를 핑계로 아무런 시도도 해보지 않느냐는 아내의 훈계(?)를 듣자 평소 친하게 지내던 베를린 거주 이탈리아계 스위스 피아니스트 프란체스코 피에몬테시와 고민을 나누게 된다. 그 과정에서 생각이 떠올랐다고 한다. 리더 기질이 강해 많은 음악가들의 구심점 역할을 해온 피에몬테시는 일단 자기 집으로 몇 명을 초대해 하우스 콘서트처럼 시작하려고 했는데, 이런 시도들이 이미 많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자 뭔가 다른 차별점을 모색하기로 했다. 그래서 작지만 좀 더 제대로 된 콘서트처럼 보일 장소를 물색했고 쉰켈 파빌론이라는 곳을 섭외할 수 있었다. 1969년에 지어진 쉰켈 파빌론은 19세기 전반기에 프로이센 왕실건축가로 유명했던 프리드리히 쉰켈의 이름을 딴 아담한 규모의 현대미술관이다. 이곳 역시 코로나 격리로 관람객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었기에 콘서트를 촬영하자는 제안을 흔쾌히 승낙한 것이었다. 그 결과물이 2020년 3월 말부터 5월 중순까지 열렸던 열 몇 차례의 콘서트 세션을 모은 ‘홈 뮤직 베를린’이다. 이 영상물의 미덕은 너무나 많다. 우선 상업용 영상물로는 드물게 오페라나 오케스트라 공연이 아닌 실내악에 집중하고 있다. 물론 독주자 위주로 섭외했기 때문에 현악사중주 같은 장르 대신 피아노 독주곡이거나 독주악기(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클라리넷)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혹은 피아노 반주의 성악곡들이 대부분이긴 하다. 레퍼토리도 뻔한 인기곡보다는 명곡의 반열에 오를 법한데도 실제로 들을 기회는 많지 않은 곡들을 다수 포함했다. 콘서트를 다 합치면 그 분량이 무려 6시간에 달하고 그 길이에 비하면 가격도 저렴하다. 연주자의 면면도 알렉산더 멜니코프, 세베린 폰 에카르트슈타인(이상 피아노), 크리스티안 테츨라프, 이자벨 파우스트(이상 바이올린), 타베아 치메르만(비올라), 샤론 캄(클라리넷), 로만 트레켈(바리톤) 등 우리에게 잘 알려진 세계적 스타 뿐 아니라 다양한 국적의 젊은 유망주들을 망라하고 있다. 특히 오세아티아 출신의 러시아 여성 피아니스트 즐라타 초치예바, 이스라엘 피아니스트 이도 바르-샤이, 독일의 여성 바이올리니스트 베로니카 에버를, 첼리스트 가브리엘 슈발베, 우크라이나 소프라노 올레나 토카르, 미국 소프라노 재클린 와그너 등은 우리나라에 덜 알려진 새로운 발견이다. 콘서트에 앞서 약 60분 분량의 다큐멘터리가 따로 제공되는데, 이 프로그램의 성사 배경, 쉰켈 파빌론의 모습, 참여 연주자들의 짧은 인터뷰, 그리고 콘서트 영상에는 생략된 피에몬테시 자택에서의 콘서트 일부가 실려 상당히 흥미진진하다. 이 다큐멘터리부터 먼저 보고 콘서트를 즐기면 재미가 배가될 것이다. 유형종 음악&무용칼럼니스트·무지크바움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