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는 증거에 의해 사실관계를 확정한 후 법률관계를 둘러싼 이해관계인의 여러 이익과 고려 요소들이 미리 반영되어 녹아 있는 실체 법리와 판례를 적용하는 포섭과정을 거쳐 결론에 이르게 되고, 최종적으로 판결문을 작성하게 된다. 통상은 이로써 재판으로 오게 된 해당 사건에 대한 법적 해결이 마침표를 찍게 된다. 그런데 어떤 사건은 이 지점에 이르러서 또 다른 각도에서 판사의 고민이 시작되도록 만든다. ‘법리와 판례대로라면 원고의 청구가 기각될 것인데, 과연 이대로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는 것이 맞을까?’, ‘법리에 따른 답을 내는 것에 그치기보다는 다른 방식으로 사건의 실질적인 해결책을 제시해주는 것이 해당 사건의 구체적인 타당성에 더 부합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계속 맴돌게 되고, 여운이 남게 되는 경우이다. 평소에는 판사가 전형적인 방식에 의해 판결문을 작성하여 사건을 처리하다가도, ‘다른 묘수는 없을까’를 궁리하도록 만드는 상황이 종종 발생할 수 있다.대표적인 예가 바로 민사재판에서 조정이나 화해로 사건을 해결하는 것이 더 적절한 경우이다. 증명책임과 증명력의 법리를 엄격히 적용한다면 일방의 전부 승소 또는 패소로 갈릴 수밖에 없겠지만, 일정 부분 양보를 이끌어낼 만한 사정이 재판과정 중에 엿보인다면, 조정이나 화해를 통해 상대방이 서로 수용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해결책을 제시해 보는 것이 그대로 판결하기보다 더 나은 경우가 있다. 처분권주의와 강제집행상의 문제를 발생시키지 않는 범위에서 해당 민사분쟁과 연관된 당사자 간의 이해관계 조율을 반영하거나 당사자가 염려하는 부분을 해소할 수 있는 탄력적인 조정조항을 추가하는 것이 묘수가 될 수 있다.판사가 묘수를 짜내도록 하는 유사한 상황은 형사재판에서도 등장한다. 예를 들면, 피고인에게 실형을 선고하기보다는 집행유예를 붙여 선처해 주면서도, 피고인의 재범 가능성을 막고 피고인의 개선·자립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 피고인의 생활·심신 상태, 범죄·비행의 동기, 거주지의 환경 등을 세심히 참작하여 이른바 ‘1:1 맞춤형 특별준수사항’을 부가한 보호관찰 조건부 집행유예를 하는 것이 묘수로 유효할 수 있다. 결국 당사자의 입장과 상황을 조금 더 헤아려 주려는 것, 그것이 판사가 묘수를 찾아내려는 계기와 노력으로 이어지는 동인(動因)이다.정문경 고법판사(서울고법)